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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여자는 행복해 vs 엄마는 불쌍해

입력 | 2005-12-15 03:10:00


“유대인 남자는 너무너무 자상해요. 제 아파트 구석구석에서 섹스를 했는데, 절 흥분시키려고 무진장 애쓰는 거예요. 대담한 짓까지 하게 되는 거 있죠. 근데 클리토리스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더라고요.”(라피)

“진짜요? 보여 줬어요?”(리사)

“당연하죠. 괜히 빼지 않고 열심히 배우던 걸요. 겨우 두 여자하고 자 본 게 다래요.”(라피)

“아니, 두 명하고 잤대요?”(리사)

“왜 남자들이 어린 여자애를 찾는지 알겠어요. 신선한 젊음, 탱탱한 몸매, 귀여운 순진함, 불타오르는 열정까지!”(라피)

“저기요. 민망하니까 이젠 그만….”(리사)

“그이 페니스가 어찌나 예쁜지, 모자를 떠주고 싶다니까요.”(라피)

‘15세 이상 관람 가’ 등급을 받은 영화 ‘프라임 러브’의 결정적인 한 장면. ‘라피’는 37세 이혼녀(우마 서먼), ‘리사’(메릴 스트립)는 라피의 정신치료를 담당하는 심리상담사다. 라피는 열네 살 연하의 ‘영계’와 첫 섹스를 가진 뒤의 감흥을 리사에게 털어놓는다. 뭐가 문제냐고? 리사는 라피가 사귀는 23세 애송이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상담자로서의 직업윤리에 발목 잡혀 일언반구 말도 못하고 라피의 얘기를 듣고만 있는 리사의 심정은 어떨까. 또 심드렁했던 인생에 막 종말을 고하고, 비록 ‘어린애’지만 뜨겁게 자신을 사랑해 주는 남자를 만난 이혼녀의 마음은 어떨까. 38세 싱글 여성 A 씨와 중학생 아들을 둔 43세 어머니 B 씨가 각각 라피와 리사의 처지에서 그들을 옹호했다. 당신이라면 누구의 편에 서겠는가.

○ 38세 싱글 여성 A 씨

아, 라피의 행복감이여! 라피는 뭣도 모르는 어린애에게 성(性)을 가르쳐 준 뒤 함께 즐기자는 식의 태도가 아니다. 자신의 몸을 통해 남자의 빈곳(빈약한 성 지식)을 채워 주고자 하는 심정이다.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해 주는 남자와 사랑을 나눌 때, 여자는 자신이 너무 멋져 보인다는 생각을 한다. 그건 상대가 열네 살 어린 풋내기라도 마찬가지다. 나를 만족시키려고 애쓰는 남자를 보면서 여자가 품는 생각은 ‘그를 데리고 놀고 싶어’가 아니라, ‘그에게 내 모든 걸 주고 싶어’ 쪽이다. “모자를 떠주고 싶다”는 말은 상대를 얕잡아 보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도 소중한 걸 감싸 주고픈 마음이다. 겨울 새벽에 학교 가는 아들에게 모자를 씌워 주며 ‘내 새끼, 춥지 말았으면’ 하는 모성 말이다. 신체 구조상 여자는 남자에 비해 자신의 은밀한 곳을 볼 기회가 극히 적다. 성기를 보여 주는 라피의 행위는 한 여자가 진정 마음속 깊이 사랑하는 남자하고만 나눌 수 있는 ‘증명 행위’인 것이다.

○ 중학생 아들 둔 43세 엄마 B 씨

아, 불쌍한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여! 어머니는 자기 아닌 다른 여자가 아들의 은밀한 부위를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을 감당해 내지 못한다. 그게 아들의 아내(며느리)일지라도 말이다. 아들이 사춘기가 지나면 어머니는 더는 아들의 몸을 제대로 볼 수 없지만, 어머니란 존재는 늘 ‘아들의 모든 걸 알고 있다’는 위안을 품고 사는 법이다. 난데없이 ‘불여우’가 나타나 아들의 고추가 귀여워 죽겠다고 수다를 떠니, 어머니의 가슴은 찢어질밖에. 그건 단순히 소유욕에 상처를 입었거나, 자신의 위치를 빼앗기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경계심 따위가 아니다. 아들이 다른 여자에게 속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데서 오는 상실감에 가깝다. “신선한 젊음, 탱탱한 몸매” 운운하는 라피를 보면서 리사는 성(性)이라는 일종의 권력관계에서 아들이 여자에게 종속돼 있고 결국엔 정신적으로까지 종속되고 말 것이라는 절망스러운 확신을 갖게 된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