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양대 사범대 부속중학교 학생들이 9일 도서관에 모여 자신들의 홈페이지를 꾸밀 그림을 만들고 있다. 방학을 이용해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 그림과 글로 자신을 표출하는 것이 1318세대 사이에 유행이다. 김재명 기자
《“선생님, 배가 아픈데 병원에 가도 되나요?” “그래, 수업 끝나고 우선 양호실로 와 봐라.” 지난주 금요일, 서울 A중학교 수업시간에 있은 이모(15) 양과 담임교사의 대화다. 대화 내용은 ‘평범’했지만 방식은 ‘독특’했다. 이날 아침부터 생리통이 심했던 이 양은 3교시 수학 수업 중 교무실에 있는 담임교사에게 휴대전화를 이용해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답신을 받았다.》
‘대화’보다는 ‘표현’을 즐기는 1318세대에게는 휴대전화, 인터넷 홈페이지 등 비대면(非對面) 공간이 의사소통의 주요 통로가 되고 있다. 평소 말이 없고 감정 표현에 서툴렀던 아이들도 온라인 세상에서 채팅을 통해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거나 숨겨 왔던 자신의 끼나 관심사를 알리고 있다.
서울 중동고 정경아(26·일본어) 교사는 “최근 인터넷 사이트의 ‘방명록’이나 ‘쪽지’보내기 기능은 학생과 학생, 학생과 선생을 잇는 새로운 대화창구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에 말수도 적고 질문도 없던 학생들조차 인터넷에서 만나면 다양한 ‘이모티콘’(감정을 표현하는 문자 또는 그림)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거나 수업시간에 궁금했던 점 등을 물어봐 ‘이 아이가 평소 보던 아이일까’라고 놀랄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들은 연애나 친구 사귀기도 채팅이나 문자메시지를 통해 한다. 사이버 대화가 이들에겐 말보다 편한 대화의 수단이 된 것. 국내 이동통신사 가입자 가운데 1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8% 내외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문자메시지는 전체 이용량의 55%가 넘는다.
서울 A고교 2학년생 김동민(18) 군은 매일 밤 여자 친구와 인터넷 메신저를 한다.
김 군은 “전화 통화를 하면 서로 말을 안 하는 어색한 공백시간이 생기기도 하고, 별것 아닌 말실수나 졸린 목소리 같은 감정이 드러나 불필요한 오해가 생긴다”면서 “메신저나 문자를 이용하면 애정표현도 오버(과장)할 수 있고, 사진이나 영화를 함께 보거나 이를 선물할 수도 있어 지루하지 않다”고 말했다.
방학을 앞둔 H중학교 손태인(13) 군은 자신의 ‘주특기’인 ‘디지털 인형놀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 더 많은 친구를 사귈 생각에 한껏 들떠 있다.
디지털 인형놀이는 예전에 종이인형에 옷 모양의 그림을 오려 붙이던 놀이가 변형돼 친구의 얼굴에 연예인 옷을 입혀 주는 일종의 컴퓨터 사진 합성 놀이로 학생들 사이에서 ‘신화놀이’란 이름으로 최근 유행하고 있다.
한 번 작업하는 데 무려 3시간이나 걸리지만 친구들은 그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 복사해 가거나, 자신의 얼굴에도 연예인 옷을 입혀 달라며 부탁한다. 친구들이 친해지려고 애쓸 정도로 손 군의 인기는 ‘짱’이다.
내년에 특목고로 진학할 예정인 J중학교 김현지(16) 양도 방학 중 홈페이지를 대폭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다. 새로운 학교에 입학하기 전 친구 사귀기의 주요 매개체인 홈페이지에 자신에 대해 더 많은 얘기를 담겠다는 것.
김 양은 “반 친구들의 이름만 알면 검색기능을 이용해 그 친구의 홈페이지를 금방 찾을 수 있다”며 “친구의 홈페이지를 통해 평소 생각이나 관심사도 알 수 있고 또 서로 함께 알고 있는 친구가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어 빨리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 김영민 박사는 “콘텐츠 세대로도 불리는 C세대는 자신과 관련된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을 포함한 내용물(콘텐츠)을 만들어 내고 이를 공유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고 분석했다.
김재영 기자 jaykim@donga.com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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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대들이 문자메시지나 인터넷 채팅을 통해 주고받는 일명 ‘외계어’ 중 일부다.
감각적이고 개성 있는 표현법이 인기를 끌자 문법이나 한글맞춤법을 무시한 새로운 글자들이 유행하고 있다.
일선 지도교사와 국어학자들은 한글 파괴 현상이 심각한 수준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경기 부천시 계남고 박지연(28) 국어교사는 “받침에 대한 요즘 학생들의 무지는 심각한 수준”이라며 “문자를 빨리 보내려고 연철(받침을 다음 자의 첫소리로 이어 씀)로 작성하던 습관이 학습현장에서 그대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실제로 고교생 중 상당수는 ‘꽂다, 꽃, 꼿꼿이’ 등을 제대로 받아쓰지 못한다.
일부에선 무분별하게 들어오는 외래문화나 외국어 ‘숭상’ 풍조가 한글 파괴를 부추긴다고 지적한다.
충남 Y고 손영섭(19) 학생은 “최근 일본에서 들어온 ‘다이모’ 놀이가 친구 사이에 인기를 끌면서 ‘차카게 살자’(착하게 살자·CHAKAKE SALJA), ‘추카추카’(축하축하·CHUKA CHUKA)처럼 우리말을 소리 나는 대로 영어로 표현하는 놀이가 유행”이라고 말했다.
다이모는 가로로 긴 플라스틱 스티커에 알파벳을 횡렬로 찍어내는 일종의 간이 라벨 제조기.
일부 교사는 TV 프로그램에서 사용하는 유행어가 이런 현상을 더욱 조장한다고 말한다. ‘조아(좋아)’, ‘∼하삼(하세요)’, ‘∼슴다(습니다)’ 등 받침을 빼고 말하는 TV출연자들의 말투가 청소년의 작문능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
서울 오산고 최두호(28) 국어교사는 “말이 인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이런 외계어는 큰 문제”라며 “경제성과 편리성을 추구하는 의사소통법이 사제지간을 포함한 인간관계에서도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나타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재영 기자 jay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