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이 ‘남북한 상호 사찰’ 수용 의사를 밝힌 것은 ‘남한 핵문제는 6자회담의 의제가 아니다’던 기존 입장과는 180도 다른 것이다.
상호 사찰이 실시되면 북한 당국이 한국군과 주한 미군을, 한미 당국이 북한 군대를 훑고 뒤지는 초유의 일이 벌어지게 된다. 그러나 한미 보수층의 반발과 사찰 대상의 선정 문제 등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다.
▽정부 “사찰을 거부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한미 양국은 7월 말 시작된 4차 6자회담에서 북한이 ‘남한 핵무기 철폐’를 주장하자 “6자회담은 북핵 문제를 논의하는 곳으로 남한 핵문제는 의제가 아니다”고 일축했다.
따라서 한미가 남북 상호 사찰 수용 의사를 밝힌 데 대해선 “북한의 핵무기를 폐기하기 위해 너무 양보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1992년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 포함된 상호사찰 실시 관련 합의를 이행하는 것으로 간주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북한이 핵 폐기와 사찰을 수용하면서 ‘남쪽에도 정말 핵무기가 없는지 검증해 보자’고 할 경우 거부할 명분도 약하고 못 보여 줄 이유도 없다는 판단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국무부의 한국어 통역관 출신인 김동현 고려대 연구교수는 최근 6자회담 공동성명 중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 문구와 관련해 “남한도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남한으로선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우리가 바보인 줄 아느냐. 상호 사찰 가능성을 다 계산한 뒤 사인했다”고 반박했다.
▽상호 사찰 어떻게 진행될까=사찰단에는 6자회담 참가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참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IAEA는 평화적 핵 활동을 감시하는 기구로서 핵무기 폐기와 관련한 경험이나 능력이 없어 제한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핵무기 사찰 능력은 핵 보유국이 갖고 있다”고 말했다. 6자회담 참가국 중 미국 중국 러시아가 핵 보유국이다.
사찰 순서와 관련해 북한은 동시 사찰을 원하겠지만 한미는 북한이 성실하게 사찰받는 것을 확인한 뒤 사찰에 응할 수 있다고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사찰 대상도 논란이 될 수 있다. 정부 당국자는 “상대방이 요구하는 모든 지역과 시설로 할지, 일정한 수준 이상의 증거를 제시해야 포함할지는 6개국이 논의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北 사찰요구 예상지역은▼
남북한의 상호 핵사찰이 성사될 경우 북한은 가장 먼저 경기 오산시와 전북 군산시의 미 공군기지 등 주한 미군의 주요 기지에 대한 집중적인 사찰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주한 미군 전력 증강의 일환으로 1958년부터 1992년 2월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이 발효되기 직전까지 주한 미군의 주요기지에 700∼1000여 개의 전술 핵무기를 배치했기 때문이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1958년 초 핵탄두와 재래식 탄두를 모두 장착할 수 있는 280mm 핵 대포와 어니스트 존 지대지 미사일을 주한 미군 기지에 처음 배치했다. 1960년대 중반에는 핵지뢰(AMD)가 오산 기지에 도입됐고, 핵탄두를 장착한 나이키 미사일도 휴전선과 가까운 서울 북쪽 지역에 배치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1974년까지 미국은 주로 휴전선에서 50마일(80.5km) 이내에 있는 주한 미군 기지에 핵탄두와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을 배치 저장해 왔다는 것. 하지만 1977년 지미 카터 미 행정부의 주한 미군 철군 정책으로 핵무기가 700여 개에서 250여 개로 줄었고 보관 장소도 군산 기지로 통폐합됐다.
군산 기지의 핵무기 보유량은 1985년 150개에서 조지 부시 행정부 출범 뒤인 1989년에는 100개로 줄었다. 1992년 남북 비핵화공동선언에 따라 주한 미군은 핵무기 전량 철수를 선언했다.
북한은 또 대덕연구단지에 대한 고강도 사찰을 요구할 가능성도 높다. 대덕연구단지 내 한국원자력연구소가 과거의 핵물질 실험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신고하지 않아 지난해 IAEA의 사찰을 받았기 때문.
당시 북한의 노동신문은 대덕연구단지가 원자력연구소와 국방과학연구소(ADD)를 비롯한 77개의 핵무기 연구개발 및 생산기관이 집중된 남한의 종합적인 핵무기 개발기지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이와 함께 대학 등 민간기관의 원자력 관련 연구시설과 전국 20기의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사찰도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