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만 해도 부부보다 다정한 사이였는데….”
지난해 12월 우크라이나 민주화시민혁명(오렌지혁명)을 함께 이끌었고 집권 후에는 나란히 대통령과 총리로 권력을 나눠 가졌던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과 율리야 티모셴코 전 총리. 찰떡궁합을 보여 ‘오렌지 커플’로까지 불리던 이들의 관계는 9일 유셴코 대통령이 티모셴코 내각을 전격 해산하자마자 순식간에 정적(政敵) 관계로 돌변했다.
유셴코 대통령은 11일 “티모셴코 전 총리에 대한 부패 의혹을 수사하라”고 수사기관에 지시했다. 티모셴코 전 총리도 “유셴코 대통령이 국가의 장래를 망치고 있다”고 비난하며 맞섰다. 그는 “지지 세력을 이끌고 내년 총선에 독자적으로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오렌지혁명 당시 두 사람은 시위현장이나 공식 석상에서 너무 다정한 모습을 보여 “연인이 아니냐”는 오해까지 받았다. 두 사람이 갑자기 결별하면서 해프닝도 일어났다. 티모셴코 전 총리는 당초 이번 주 폴란드를 방문해 세계경제포럼이 수여하는 ‘올해의 인물상’을 받을 예정이었다. 이 상은 유셴코 대통령의 강력한 추천으로 티모셴코 전 총리에게 주어진 것. 그러나 티모셴코 전 총리는 실각 후 시상식 참석을 취소해 주최 측만 난감해 하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별이 ‘정치무상(政治無常)’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됐다는 분석도 있다. 유셴코 대통령은 재계와 동부지역의 지지를 얻기 위해 티모셴코 전 총리와 잠시 손을 잡았을 뿐이었고, 야심만만한 티모셴코 전 총리 역시 다음 대권에 도전하기 위해서 언제라도 홀로서기를 할 준비가 돼 있었다는 것이다.
모스크바=김기현 특파원 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