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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도청테이프 274개 내용 수사 안한다” 확정

입력 | 2005-08-05 03:10:00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전 미림팀장 공운영(孔運泳·58) 씨 집에서 압수한 도청 테이프 274개의 내용에 대해 검찰이 “공개는 물론이고 수사의 단서로도 삼지 않겠다”는 방침을 최종 확정했다.

검찰 고위 간부는 4일 “도청 테이프는 불법 증거이므로 이를 근거로 수사에 나서는 것도 불법”이라며 “공개와 수사 착수를 요구하는 여론이 강하다고 해도 법 집행 기관인 검찰이 법을 어기면서 여론에 따를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도청 테이프 내용 분석도 도청 자체와 도청 테이프 유출 수사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의 이 같은 방침은 수사와 공개를 요구하는 정치권과 여론에 휩쓸리지 않고 ‘법대로’ 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한 것이다. 일선 검사들은 도청 수사에 관한 검찰의 ‘독립 선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삼성그룹 관계자의 정치권 뇌물 제공 의혹 등이 담겨 있는 이른바 ‘X파일’ 내용에 대해서는 불법 증거 논란에 대한 결론이 나지 않아 수사 착수 여부를 확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 서창희·徐昌熙)는 1999년 9월 재미교포 박인회(58·구속) 씨에게 도청 테이프와 녹취록을 유출한 혐의(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으로 공 씨를 이날 구속했다.

검찰은 박 씨에게서 테이프를 건네받아 테이프에 담긴 내용을 보도한 MBC 이상호(李相澔·37) 기자를 5일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국정원은 안기부의 도청 사건에 대한 중간조사 결과와 함께 대(對)국민 사과 성명을 5일 발표한다.

국정원은 지난달 안기부 비밀 도청 조직인 ‘미림팀’의 도청 사건이 불거지자 자체 조사에 착수해 1994년 미림팀의 재구성 배경과 활동 내용, 보고 라인, 도청 테이프 및 녹취록의 유출 경위 등을 조사해 왔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1999년 孔씨테이프 회수 직후 내용 전부 확인”▼

전 국가안전기획부 미림팀장인 공운영 씨가 1999년 불법 도청 테이프를 반납할 때 국정원 고위간부였던 A 씨는 3일 “자료 회수 직후 직원 5∼7명이 테이프를 일일이 풀어 리스트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A 씨는 본보 기자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공 씨가 제출한 녹취보고서와 우리가 만든 리스트를 대조한 결과 테이프는 있는데 녹취보고서는 없는 것이 많았다”고 밝혔다. 이는 국정원이 도청 테이프의 내용을 전부 확인했다는 뜻이다.

그는 “잠금장치를 해 놓아 테이프와 리스트를 도저히 빼낼 수 없는 보안팀 방에 보관했다가 나중에 테이프를 소각할 때 리스트를 보고 맞춰가며 했다”면서 “리스트 자체도 나중에 소각했다”고 말했다.

A 씨는 “미림팀의 도청 대상에는 당시 여야 정치인, 언론인, 검사, 국정원 직원까지 거의 모든 권력기관의 관계자들이 망라돼 있었지만 내용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A 씨는 “테이프가 국정원에 반납되기 전에도 많은 여야 정치권 실세가 테이프를 입수하기 위해 공 씨를 찾아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