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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살인에 관한 화려한 수사…‘박수칠때 떠나라’

입력 | 2005-08-04 03:11:00

사진제공 필름있수다


○ 단서없는 현장… 두 시간 만에 용의자 검거, 그러나…

영화의 이야기를 뼈, 배우를 육질에 비유할 수 있다면 장진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영화 ‘박수칠 때 떠나라’는 불필요한 지방은 쏙 빠지고 살코기만 매끈하게 붙은 튼실한 뼈다귀다. 형형색색의 고명(특수효과나 액션)이나 후각을 자극하는 향신료(화려한 미술이나 시각디자인)가 들어간 것도 아닌데 탱탱한 육질과 뼈는 자근자근 씹을수록 달콤하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장 감독의 영화 중 가장 대중적이다. 살인사건 현장마다 우연히 지나쳐 용의자로 잡히는 남자(‘기막힌 사내들’)나 택시강도를 당하는 덜떨어진 남파 간첩(‘간첩 리철진’), 학생 고객은 할인까지 해주는 전문 킬러들(‘킬러들의 수다’) 같은 인물은 보이지 않는다. ‘있을 법한’ 검사 형사와 용의자 참고인 목격자 등이 ‘일어날 법한’ 살인사건을 두고 벌이는 추리 수사극이다.

강남 특급호텔 1207호실에서 미모의 카피라이터 정유정(배우 이름을 밝히면 주요 반전이 드러남)이 흉기에 아홉 번 찔린 시체로 발견된다. 경찰은 사건 발생 2시간여 만에 용의자 김영훈(신하균)을 호텔 주차장에서 체포하고 강력사건 해결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최연기(차승원) 검사가 그를 신문한다. 한 방송사는 ‘좋은나라만들기 운동본부’와 함께 수사과정을 48시간 동안 전국에 생방송한다. 그러나 거짓말 탐지기 검사 결과, 김영훈이 범인이 아닌 것으로 나오자 최 검사는 곤혹스러워진다.

○ 차승원 신하균의 웃음 콤비… 장진 식 유머는 계속된다

장 감독은 이 영화에서 연극적 연출과 영화적 연출의 절묘한 조화를 보여준다. 촬영의 80%는 경기 파주 헤이리 아트서비스 스튜디오에 복층으로 지은 350평 규모의 수사본부 세트에서 진행됐다. 세트는 연극 무대처럼 한정돼 있지만 카메라는 이 안을 수직 수평으로 교묘히 이동하며 열린 공간으로 보이게 한다. 그러면서도 닫힌 공간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심리적 충돌과 갈등을 박진감 있게 포착한다.

장진 식 유머는 이번에도 빛을 발한다. 이 영화에서 누구를 웃겨보겠다는 시도는 조금도 하지 않은 차승원과 과묵한 신하균이 마주 앉은 취조실 분위기는 진지함으로 팽팽하다. “너 나한테 말할 때 1형식(주어+동사)문장으로만 말해…알았어?”(차승원) “나는…알았습니다.”(신하균) “휘발유통 왜 들고 갔어?”(차) “나는 불을 지르려고 했습니다.”(신) “3형식이잖아!”(차) “나는 힘듭니다.”(신) “뭐가?”(차) “1형식은 힘듭니다.”(신) 우스운 상황도 아니고 두 배우가 오버를 하는 것도 아닌데 ‘키득’ 웃음은 어느새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온다.

○ 신구 류승용 등 조연들의 절제된 연기 볼만

이 영화에 ‘올해의 명장면’이라고 부름직한 장면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시종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힘이 있다.

배우들의 대사가 많고 때때로 웃기지만 이야기의 핵심은 길을 이탈해 떠돌지 않는다.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수사에 무당을 이용하자는 방송사의 제안에 따라 벌어지는 굿판마저 관객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긴박한 스릴러는 아니지만 무릎을 칠 만한 반전이 있고, 무서운 호러는 아니지만 등골이 서늘해지는 공포가 숨어 있다.

신구를 비롯해 류승용, 이한위, 임승대, 장영남 등 조연의 연기는 절제돼 있으면서도 뛰어나다.

차승원은 비로소 이들 연기에 묻어가면서도 빛을 발하는 법을 터득한 듯하다. 음악을 맡은 한재권은 수사극의 음악이 가야 할 길 하나를 제시했다. 이래저래 장 감독에게는 빛나는 8월이 될 것 같다. 15세 이상.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