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정도상(45·사진) 씨는 6일 오전 북한 개성으로 향했다. 그는 20일 평양에서 열릴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남북작가대회)’ 남북 합의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정 씨는 작고한 문익환 목사가 만든 단체인 ‘통일맞이’의 집행위원장, 민족문학작가회의 통일위원회 부위원장 등의 역할을 맡아 그간 ‘방북 전문 작가’라고 불릴 만큼 북한을 많이 다녀왔다. 2003년 이후 남북 협의를 위해 평양 금강산 개성 등을 38차례나 방문했다.
그가 6일 개성에 간 것은 남북작가대회의 남측 참가 인원을 100명 미만으로 해달라는 북측의 요청에 대해 “지난해 신청자인 110명 수준으로 해달라”고 막바지 협상을 하기 위해서다.
또 다른 방북 이유는 ‘겨레말큰사전’ 공동 제작 협의다. 1989년 문익환 목사와 북한 김일성 주석이 합의했던 ‘겨레말큰사전’ 사업은 단순히 ‘종이 사전’만을 만드는 게 아니다. 정 씨는 “2월에 남북한 편찬위원회가 결성됐으며 2012년까지 남북한의 방방곡곡과 중국 러시아 일본 등지의 동포들을 찾아다니며 갖가지 사투리와 토속어 수십만 단어를 말할 때의 입 모양을 캠코더로 촬영하고 녹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민족이 쓰는 모든 말을 채록하겠다는 것이다.
남북작가대회는 지난해 8월 24∼29일 열릴 예정이었지만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개막 닷새를 앞두고 무기 연기됐다. 정 씨는 “하지만 올해 들어 북한에 갈 때마다 ‘뭔가 달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는 북측의 협상 문건에는 ‘반미 자주화’라는 문구가 빠진 적이 없었고, 이 때문에 남북간 의견 충돌이 잦았는데 올해는 아예 사라졌다는 것. 특히 평양 시내의 ‘정치적인 구호’들도 많이 사라졌다고 정 씨는 전했다.
정 씨는 “북측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소설의 소재들이 쌓여 가고 있지만, 앞으로 오랫동안 쓰지 않겠다”고 말했다. 공적인 일을 하면서 얻은 소재로 소설을 쓸 경우 앞으로 남북 교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언젠가는 남북한을 다룬 소설을 쓰고 싶다”며 작가로서의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한편 이번 남북작가대회 이틀째인 21일 남측의 작가들은 춘원 이광수와 우파 정치인이자 언론인 안재홍 등 이른바 ‘재북(在北) 인사’(작가회의 측은 납북 인사라는 용어 대신 재북인사란 표현을 사용했다)의 무덤을 찾아가 참배할 예정이다. 북한 측이 납북 인사 무덤 참배를 허용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