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제임스 릴리(사진) 미국기업연구소(AEI) 연구원은 11일 “동북아시아 안보 지형을 북방 3각, 남방 3각동맹으로 구분하는 것은 정확한 진단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중국통(China hands)’이라는 저서를 내기도 한 릴리 전 대사는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에 대해 직접적인 평가를 피하면서도 동북아 갈등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태도를 보였다.
―일본의 역사왜곡 교과서 및 독도 도발이 6자회담 성공을 위한 5국의 협력 구도를 해치고 있다.
“분명히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관련 당사국들은) 냉각기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전진할 수 있다. 프랑스 독일 영국처럼 민족적 자부심이 강한 나라들은 두 차례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4000만 명을 서로 죽였다. 하지만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과 독일의 헬무트 콜 총리는 손을 맞잡았다. 한국이 일본에 끊임없이 사죄를 요구하면 일본을 방어적으로 만들 뿐이다.”
―미국이 21세기 동북아 전략을 짤 때 동북아의 민족주의적 갈등 상황도 고려했을 것으로 보는가.
“1969년 (아시아 방위는 아시아가 맡으라는) 닉슨 독트린부터 그런 고려는 있었다. 아시아의 민족주의는 반대그룹을 없애고 파워를 형성하기 위해 지도자들이 부추긴 측면이 있다. 중국은 공산주의와 민족주의로 유지되는 나라지만, 경제 개방 과정에서 공산주의는 사라졌다. 이제 민족주의만 남아 있다.”
―북방 3각, 남방 3각동맹론이 부적절하다고 보는 이유는 뭔가.
“중국은 마피아가 힘을 얻어가는 러시아를 존경하지 않으며,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실패한 사람(loser)’으로 본다. 중국은 북한 러시아보다 한국 미국과 손잡고 싶어 한다. 한국과 미국이 21세기 중국의 목표에 부합한다.”
릴리 전 대사는 “노 대통령이 말하는 동북아 균형자론과 한미동맹 강화가 양립 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미군은 북한의 위협을 막기 위해 한국에 주둔한다. 그러나 한국은 북한의 위협은 없다고 말한다.” 양국 간 인식의 골이 너무 깊어 한미동맹을 기초로 한 ‘동북아 균형자론’이라면 별 의미가 없다는 뜻으로 들렸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