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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송영언]‘젊은 대원군’이 너무 많다

입력 | 2005-03-29 19:01:00


한 중견 건설업체 임원이 “우리나라엔 지금도 대원군(大院君)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21세기 세계화시대에 구한말 쇄국(鎖國)의 주인공을 떠올리다니 무슨 뜻인가. 외국이나 외국인이라면 거부 반응부터 보이는 사람이 아직도 많고, 그래서 국가경쟁력 향상에 장애가 된다는 얘기다.

송도경제특구에 외국인학교를 짓는 문제가 표류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지난해 국회에 제출된 ‘경제자유구역 및 국제자유도시의 외국 교육기관 설립·운영 특별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에 발목이 잡혀 있는 것이다. 여당의 일부 386 의원과 전교조 소속 교원 등 ‘젊은 대원군’들이 법안에 포함된 내국인 입학 허용, 학력 인정, 결산 잉여금 본교 송금 등에 반대하고 있어서다. 허용할 경우 부유층을 위한 ‘귀족학교’가 돼 위화감이 조성되고, 외국 학교가 경쟁적으로 들어와 한국의 교육시스템을 흔들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경제특구에 외국인학교가 있어야 외국 기업인과 기술자가 들어오는 것은 상식이다. 그래야 외국 기업의 투자를 촉진해 고용 창출과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초중고교생의 조기 유학이 크게 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 일부를 흡수하는 효과도 클 것이다. 외국인학교 설립에 제동을 걸려면 늘어나는 유학 비용의 일부라도 부담할 용의가 있어야 주장에 약간의 설득력이나마 있을 것이다.

이런 마당에 외자 유치인들 제대로 될 리 없다. 송도 청라 영종 광양 부산·진해 등 5개 경제특구 모두 실적이 없거나 1, 2건에 불과하다. 말이 ‘특구’지 실제로는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다. 송도특구에 병원 설립을 검토해 오던 미국 하버드대가 중국 등으로 방향을 튼 이유도 분명하다. 까다로운 조건이 싫어서다.

자유무역협정(FTA) 등 세계의 무역질서 재편 흐름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싱가포르 칠레 멕시코 등은 여러 나라와의 FTA 발효를 통해 자국 시장 규모를 최대 300배까지 늘렸다. 그러나 우리의 FTA 체결 건수는 칠레와 맺은 1건뿐이다. 다음 달 1일로 1주년을 맞는 한-칠레 FTA가 그동안 가시화한 성과를 보더라도 대원군 같은 자세가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알 수 있다.

관리들은 입만 열면 교육 의료 법률 문화 농업 등 각 분야의 개방을 강조한다. 하지만 후속 조치는 미흡하기 짝이 없다. 개방을 법적으로 뒷받침해 줘야 할 정치권 일각의 기회주의적 처신도 변함이 없다. 이해관계자나 관련 단체의 눈치만 보며 세월을 보내고 있는 인상이다. 국가경쟁력과 국익보다 ‘표’가 더 우선인 것이다. 혹시라도 ‘자주’와 ‘민족’을 강조해 온 요즘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젊은 대원군’들이 활보할 공간을 넓혀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관료 국회의원 교사 의사 법조인 문화인 기업인 농어민 모두 달라져야 한다. ‘마음속의 척화비(斥和碑)’를 부수고 ‘대원군의 망령’을 걷어내야 한다. 특히 국회의 ‘386 대원군’들은 국민과 자신들이 먹고살 것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기 위해 요즘 많이 열리는 경제교육 현장에 한번이라도 가보기 바란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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