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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조수진]1심땐 벌금 1000만원, 2심에선 80만원

입력 | 2005-03-11 18:40:00


같은 물건을 놓고 세 사람이 길이를 쟀다.

A는 300m라고 했다. 그러자 B는 “제대로 재야지”라며 1000m라고 반박했다. 맨 마지막에 나선 C는 “이런저런 사정을 고려해서 재야 할 것 아니냐. 80m밖엔 안 돼”라고 했다.

3배 이상 늘어나더니 다시 10분의 1 이하로 줄어드는 이런 일을 두고 사람들은 흔히 ‘고무줄 잣대’라고 부른다. 다른 곳보다 ‘엄정하다’는 법의 세계에서도 이런 일이 생긴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17대 총선을 앞두고 당내 경선 과정에서 학력과 경력을 허위 기재한 혐의(선거법 위반)로 기소된 열린우리당 D 의원은 10일 항소심에서 벌금 80만 원을 선고받았다.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을 받고 이것이 그대로 확정되면 의원직을 잃는다.

검찰은 벌금 300만 원을 구형했지만 지난해 12월 1심인 전주지법 군산지원은 구형량의 3배가 넘는 1000만 원을 선고했다. 이때 재판부는 “검찰의 수사가 미진하다”며 검찰을 타박하기도 했다. 그런데 2심인 광주고법은 1심 선고 형량의 10분에 1에도 못 미치는 벌금 80만 원을 선고했다.

양형의 차이만큼 판결 요지도 크게 달랐다.

1심 재판부는 “탈법적 사안이 중대하고 공명선거의 이념을 훼손한 점이 인정된다”고 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학력과 경력을 허위 기재했지만 발견 즉시 수정한 점과 초선인 데다 부정부패에 물들지 않고 성실히 의정활동을 수행한 점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두 재판부가 인정한 혐의가 일치하고 적용한 법률도 같은데 결론만 달랐던 것. 어떻게 이런 상이한 결론이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 경우를 보면서 역시 당내 경선 과정에서 학력을 허위 기재했다가 지난해 12월 의원직을 잃고 현재 징역 1년형을 살고 있는 이상락(李相樂) 전 열린우리당 의원과의 형평성 문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하도록’ 보장돼 있어 판결에 대해 왈가왈부하기가 조심스럽다. 하지만 양형이 어느 정도는 비슷해야 국민이 납득할 수 있지 않을까.

조수진 사회부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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