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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士 여가 엿보기]김재정 대한의사협회 회장

입력 | 2005-02-24 15:41:00

대한의사협회 김재정 회장이 진공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감상하며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사진제공 대한의사협회


김재정 대한의사협회 회장(55)의 서울 용산구 이촌1동 협회 사무실에 들어서면 커다란 덩치의 물건과 마주치게 된다.

의료기구가 아니다. ‘골동품’에 가까운 진공관 라디오다. 젊은 사람들은 낯선 신기함에, 또 진공관 라디오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은 옛 생각에 젖어 그 앞을 떠나지 못한다. 그러면 김 회장은 기꺼이 ‘즉석 DJ’가 된다. 라디오를 켜서 포근한 음악을 선물한다.

그는 전원을 켜면 곧바로 ‘빵빵한’ 음악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 요즘 라디오를 좋아하지 않는다. 전원을 넣고 진공관이 미세하게 떨리며 가열되기를 기다리는 순간을 좋아한다. 또 진공관이 달구어 진 뒤 비로소 흘러나오는 부드럽고 맑은 소리를 좋아한다.

김 회장이 진공관 라디오를 듣기 시작한 것은 CD가 소개되고 LP라고 불리는 레코드판이 사라지기 시작한 1980년대 중반 무렵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생과 보관이 편리한 CD를 선택할 때 그는 LP와 진공관 라디오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닥치는 대로 골동품 라디오들을 사 모은 것은 아니다.

그의 사무실과 집의 거실, 서재에 있는 손때 묻은 라디오와 턴테이블들은 완벽한 세트로 구성된 것이 없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것들을 하나하나 구입해 오랫동안 이리저리 맞춰 가면서 조합한 완성품들이다.

이렇게 모은 그의 소장품 가운데 턴테이블로는 영국 프리스테이지 제품과 1950년대 독일에서 만들어진 모노스피커 같은 명품들이 포함돼 있다. 제작된 나라도 다르고 시대도 다르지만 이 기기들은 서로 어우러져 멋진 소리를 뿜어낸다. 그는 맘에 드는 제품을 기다렸다 구입하고, 또 그 물건이 제 가치를 빛내며 자리할 때의 기쁨을 만끽한다.

그가 진공관을 쓰는 제품을 선호하는 이유는 그 생생한 현장감 때문이다. 튀는 LP판을 들으면 연주자가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지지직거리고 가끔은 소음도 섞여 나오는 그 자연스러움이 좋다. 라디오도 마찬가지다.

채널을 맞추고 약간의 잡음과 함께 소리가 시작되면 그는 어느새 편안한 모습이 된다. 격정적인 오케스트라의 음악보다는 잔잔한 실내 음악이 진공관 라디오의 특성과 더 잘 어울린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소리는 트랜지스터라디오의 음악처럼 딱딱하고 똑 떨어지는 게 아니라 둥글게 흘러나온다. 그는 어머니의 품 안에 있는 듯한 아늑함을 느끼며 진공관 라디오 소리에 깊이 몸을 파묻는다.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면서도 그는 진공관 라디오에서 흐르는 음악과 함께 한다. 이렇게 틈틈이 편안한 음악을 통해 평상심을 되찾는데, 그것은 좀 더 냉철한 판단력으로 일을 처리해 나아가는 데 훌륭한 활력소가 된다.

진공관 라디오는 그에게 좋은 친교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감상하는 시간도 좋지만 모두와 함께 즐기기도 마다하지는 않는다. 고풍스러운 음색과 선율을 즐기다 보면 사람들과 한층 더 가까워지고 마음을 터놓게 된다는 것이다. 만국의 언어인 음악이 사람의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되어 주는 것이다.

요즘 하루가 다르게 최첨단 의료기구와 신약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와 환자, 바로 사람과 사람의 제대로 된 만남이라는 게 그의 소신이다. 의사라는 직업은 겉으로는 기구나 약을 잘 다뤄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에는 인간적인 교감이 무엇보다 중요한 인술(仁術)의 바탕이 된다는 것.

과학이 이뤄낸 최첨단의 것으로 사람을 대하는 직업은 그래서 몸과 마음의 균형 잡기가 더욱 요구될지 모른다. 최첨단의 의술과 아날로그적인 인술 사이의 균형추가 그에게는 진공관 라디오가 아닐까.

홍정희 웰빙소사이어티대표 lizhong@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