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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검증]4개부처 복수차관제 도입

입력 | 2005-02-10 17:40:00



“외교통상부에선 적어도 차관 3명은 달라고 아우성이다.”

지난해 5월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외교부는 차관이 1명밖에 없어 현안이 많지 않은 중남미나 중동 쪽으로 아예 장차관이 갈 엄두를 못 낸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나 당초 외교부만 도입하기로 한 복수차관제는 이달 중 국회에서 정부조직법이 통과되면 다음달 중 재정경제부와 산업자원부, 행정자치부에도 확대 도입된다.

국가의 정책수요가 커짐에 따라 장차관의 과도한 업무부담을 덜어주어 ‘정책품질’을 높이자는 복수차관제 도입취지에는 대다수 전문가가 찬성하고 있다. 다만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복수차관제를 도입할 경우 자칫 ‘고위직 늘리기’의 편법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왜 복수차관인가?=지난해 2월경 대통령 직속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에서 복수차관제 도입을 위한 논의가 ‘은밀히’ 시작됐다. 논의가 공개돼 부처마다 경쟁적으로 차관을 더 달라고 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논의가 본격화되자 제일 먼저 재정경제부가 나섰다. 재경부 고위 관계자는 “부총리를 겸하고 있는 장관의 평소 업무부담이 워낙 커 연쇄적으로 차관이 처리할 일이 폭주한다”며 “국회라도 열리면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이런 와중에 오영교(吳盈敎) 신임 행정자치부 장관이 올 연초 취임일성으로 정부 부처 전반의 혁신을 주도하는 ‘혁신차관’을 두겠다고 선언했다. 이 때문에 다른 부처 쪽에서는 “복수차관제 도입을 담당하는 주무 부처가 먼저 차관을 늘리겠다고 나서는 것은 문제”라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아무튼 행정자치부는 복수차관 도입 부처를 선정한 이유로 △부처업무의 기능적 이질성 △미래 핵심 기능성 △조직규모 △업무량 △사회적 현안 발생 비중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행자부 관계자는 “(4개 부처는) 차관의 통솔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심도 있는 정책결정을 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작은 정부’ 물 건너가나?=당초 행자부는 이들 4개 부처 외에 교육인적자원부와 건설교통부에도 복수차관을 두려고 했다는 후문. 그러나 ‘공룡정부’라는 여론을 의식해 2개 부처는 다음 기회에 우선권을 주기로 하고 이번에는 제외했다는 것이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많은 대통령 직속 위원회에다 장관 정책보좌관 자리까지 만들어 몸집을 부풀려놨는데 복수차관 도입을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실제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직후인 1998년 장차관 등 정무직 숫자는 89명이었으나 이번에 정부조직법이 통과되면 123명으로 늘어난다.

한국방송대 강성남(姜聖男·행정학) 교수는 “군살을 빼야 할 정부가 고위직을 늘리면 하위직 공무원에 대한 구조조정마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철저한 준비 필요”=복수차관제를 도입하는 4개 부처의 제1차관과 제2차관 사이에 개략적인 업무분담은 돼 있지만, 아직 명확한 경계선은 그어지지 않은 상태.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벌써 일부 초선 의원들 중심으로 “복수차관제가 되면 정무차관으로 나가고 싶다”고 애드벌룬을 띄우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한 초선 의원은 “복수차관이 생기면 여당 국회의원들이 후보 1순위가 될 것”이라며 “상임위별로 부처 경험을 쌓겠다는 초선의원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처에서는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 중견 외교관은 “정무차관으로 정치인이 온다면 옥상옥(屋上屋)일 뿐 아니라 초등학생에게 대학수학능력시험 과외를 시켜야 하는 부담만 떠안게 된다”고 비꼬았다. 그럴 바에야 아예 복수차관을 포기하는 게 낫다는 것.

노동연구원 뉴패러다임센터의 이영호(李榮浩) 연구위원은 “차관들 간에 명확한 업무분담이 이뤄지지 않으면 결재단계가 늘어나면서 오히려 정책결정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관료사회 풍토상 1차관과 2차관의 서열관계가 맺어질 수밖에 없고, 차관끼리 경쟁을 할 경우에는 장관이 직접 나서서 ‘교통정리’를 해야 하므로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에도 심각한 장애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복수차관제 도입이 확정된 만큼 시행 전보다 철저한 준비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외국의 경우는▼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거의 모든 선진국은 복수차관제를 실시하고 있다.

보통 분야별로 1∼4명의 차관을 두는 게 일반적이며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정무차관을 따로 두는 경우가 많다.

먼저 대통령 중심제 국가인 미국은 정무차관은 없지만 장관 밑에 1명의 부(副)장관과 분야별로 3∼7명의 차관이 있다. 대(對)의회 업무와 사무 지원업무는 차관보가 맡는다.

내각책임제 국가인 영국은 정무차관만 1∼3명을 두고 있다. 또 업무 분야별로 1∼4명의 부장관이 있어 장관을 보좌한다. 이와 함께 실·국을 지휘하는 사무차관이 있어 부처 내의 행정 업무를 관할한다.

내각제 국가인 일본 역시 대신(大臣·장관) 밑에 부대신과 1∼3명의 대신정무관을 두고 있다. 단 이들은 모두 의원으로 장관을 보좌하는 기능에 그치고, 모든 업무는 장관이 직접 지휘 통솔하고 있다.

프랑스는 장관 밑에 1∼3명의 부장관과 사무차관을 두고 있다. 일반 행정을 담당하는 사무차관까지 모두 정치인을 임명하는 것이 특징이나 부장관이나 사무차관으로 임명되면 의원직을 유지할 수 없다.

오영교 행정자치부 장관은 “복수차관제는 그동안 ‘결재의 경유지’로만 여겨져 온 차관에게 시간적 여유와 권한을 부여하는 대신 책임을 확실히 지움으로써 양질의 정책결정이 이뤄지도록 한 제도”라며 “선진국은 물론 태국 말레이시아 같은 개발도상국들도 대부분 채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종대 기자 orionha@donga.com

▼4개부처 복수차관 후보는▼

복수차관제가 도입되는 부처에서는 벌써 여러 가지 말이 있다.

재정경제부에서는 박병원(朴炳元·행정고시 17회) 차관보의 승진이 유력하다. 박 차관보는 그동안 종합투자계획과 규제정비 등 주요 정책을 주도해 업무 연속성 면에서 1순위로 거론된다.

그러나 박 차관보는 김광림(金光琳·행시 14회) 차관과 같은 옛 경제기획원 출신. 따라서 옛 재무부 출신인 김용덕(金容德·행시 15회) 관세청장, 이용섭(李庸燮·행시 14회) 국세청장, 진동수(陳棟洙·행시 17회) 재경부 국제업무정책관도 후보로 거론된다.

외교통상부는 ‘다자외교 담당’을 추가로 두게 될 경우 조창범(曺昌範·59·외무고시 6회) 주오스트리아 대사와 이규형(李揆亨·54·외시 8회) 대변인의 양강 구도. 이태식(李泰植·60·외시 7회) 현 차관이 선임 역할을 하게 되면 이 차관보다 기수가 낮은 이 대변인이 유리하다는 관측이 많다. 반면 장재룡(張在龍·59·외시 3회) 전 프랑스 대사나 김하중(金夏中·58·외시 7회) 주중 대사 같은 고참 외교관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여론도 있다.

산업자원부는 산업 및 무역 총괄 차관은 현 조환익(趙煥益·행시 14회) 차관의 유임이 유력하다. 에너지 담당 차관에는 이원걸(李源杰·행시 17회) 자원정책실장, 배성기(裵成基·행시 19회) 기획관리실장, 김동원(金東源·행시 14회·전 자원정책실장) 나이지리아 대사가 거론된다.

행정자치부는 문원경(文元京·행시 17회) 차관보와 최양식(崔良植·행시 20회) 정부혁신본부장이 새 차관 후보로 거론된다. 기수 기준으로는 문 차관보가 유력하지만 ‘혁신’ 업무를 강조할 경우 최 본부장의 기용 가능성도 있다.

공종식 기자 k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