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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五.밀물과 썰물

입력 | 2005-01-26 17:58:00

그림 박순철


“원래 대왕께서는 팽월을 위(魏)나라 상국(相國)으로 삼고 대왕을 따라 팽성으로 가는 위왕(魏王) 표(豹)를 대신해 위나라 땅을 평정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에 팽월은 양(梁)땅에 자리 잡고 위나라를 우리 한나라의 군현(郡縣)처럼 다스리려 하였으나, 위왕을 뺀 위나라 장상(將相)들이 모두 항왕에게 부림을 받던 자들이라 팽월의 뜻을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항왕이 다시 팽성으로 돌아온다는 말을 듣자 서로 힘을 합쳐 팽월에게 덤비니, 마침내 그들을 당해내지 못한 팽월은 멀리 하수(河水)가로 쫓겨 가고 말았습니다.”

“실로 반복 무쌍한 것들이로구나. 항왕을 물리치고 난 다음에는 무엇보다 먼저 위왕에게 대군을 갈라주어 그것들을 벌하리라!”

한왕이 분한 듯 그렇게 번쾌의 말을 받고 눈길로 다음 얘기를 재촉했다.

“신은 군사가 모이는 대로 대왕께 달려가 어가(御駕)를 지켜야 마땅하나, 곰곰이 헤아려 보니 반드시 그 일만이 능사는 아니었습니다. 어리석은 신이 헤아리기에는 여기서 반적들을 쓸어버린 뒤에 대왕께서 서쪽으로 돌아가실 길을 터놓고 형세를 살피는 일도 또한 충성스러운 장수가 할 만한 일로 보였습니다. 팽성의 일이 잘못된다 해도 거기에는 대장군과 자방(子房) 선생이 있고, 또 풍(豊)패(沛)의 맹장들과 50만이 넘는 대군이 있어 대왕의 어가가 위태롭게 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적들을 물리치고도 그대로 대량(大梁)에 눌러앉아 있는데, 이 아침 대장군께서 사람을 보내 신에게 대왕을 맞으러 가라 일러주었습니다.”

그렇게 말을 마친 번쾌는 새삼 한왕에게 진작 서초 땅으로 구원을 가지 못한 죄를 빌었다.

한왕은 번쾌를 다시 만난 반가움과 기쁨에 허물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장하다. 십만 대군을 수수에 쓸어 넣은 패왕의 정병과 맞붙어 제 한 몸을 지켜냈을 뿐만 아니라, 패군을 수습해 반적들까지 쓸어버렸으니 실로 대한(大漢)의 효장(梟將)이라 할 만하다. 홍문(鴻門)의 잔치에서 얻은 이름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구나.”

오히려 그렇게 번쾌를 치켜세워 다시 만난 반가움과 기쁨이 주는 감격을 나타냈다. 한왕의 그런 감격은 그날이 저물기 전 곡우(曲遇)에서 한 번 더 있었다. 번쾌와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곡우로 달려간 한왕을 현성(縣城) 밖 20리나 나와 맞은 것은 스무날 전에 떠난 주발이었다. 패왕 항우가 팽성으로 돌아오기 전 곡우에서 소란을 일으킨 도적 떼를 치러 왔던 주발이 그대로 눌러앉아 쫓겨 오는 한왕을 기다리게 된 경위도 번쾌와 비슷했다.

번쾌와 주발이 거느린 2만이 더해지자 한왕의 군세는 다시 5만으로 늘어났다. 거기다가 높고 든든한 현성에 의지해 밤을 나게 되자 한군은 아래위를 가릴 것 없이 패군(敗軍)의 다급한 심경에서 놓여났다. 팽성에서 쫓겨난 뒤 처음으로 술과 고기를 내어 잔치를 벌이고 아래위가 함께 즐기다가 밤이 깊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한왕이 감격할 일은 아직 더 남아 있었다. 다음날 곡우를 떠난 한군이 광무산(廣武山) 서편 기슭에 이르러 다시 하룻밤을 묵고 형양(滎陽)으로 떠난 지 한 시진쯤 됐을 무렵이었다. 형양성에서 50리나 되는 그곳까지 한신의 명을 받은 부관(傅寬)과 근흡이 각기 3000 군사를 이끌고 한왕을 마중 나왔다. 그리고 그때부터 한왕이 형양 성안에 들 때까지 한신의 빈틈없는 안배가 이어졌다.

글 이문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