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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플린 구상 이상하다”… KAIST 교수들 총장에 정면반발

입력 | 2005-01-12 18:03:00


한국과학기술원(KAIST) 로버트 로플린 총장의 ‘KAIST 사립화 구상’에 대해 일부 교수들이 연서명 공개질의서를 보내 반대하는 등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KAIST의 앞날을 놓고 벌어지는 이번 논란은 이공계 살리기를 위한 정부의 정책 방향은 물론 과학기술 교육의 구도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반발 및 논란=KAIST에 따르면 이 학교 전기 및 전자공학 전공 교수 50명은 로플린 총장의 구상(KAIST 비전)에 문제점이 있다는 내용의 문건을 만들어 연서명한 뒤 11일 총장에게 전달했다.

‘우리들의 의견’이라는 이 문건에서 교수들은 “의대 법대 진학반 등 인기학과를 신설하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총장의 구상은 이공계 연구중심 대학을 포기하자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총장의 구상은 탈산업화 사회를 강조하며 이공계 기피를 당연한 추세로 간주하고 있지만 국가적으로는 대중적 인기와는 별개로 창의적 연구인력을 양성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학생과 동문회 등도 본격적인 논의에 나섰다. 김동근 대학원 총학생회장은 12일 “로플린 구상은 대학원 중심의 연구중심 대학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고 현실성도 의심된다는 것이 집행부의 생각”이라고 밝혔다. 총학생회는 12일 오후 총회를 열어 이 문제를 공식 논의했다.

총동문회의 윤완철 수석부회장(산업공학과 교수)은 “내주 중 동문회에 이 문제를 공식 보고한 뒤 총장을 초청해 토론회를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KAIST 관계자는 “로플린 총장의 연봉 계약서에 ‘카이스트를 세계적인 연구중심 대학으로 키워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수 학생과 우수 교수를 확보하고 정부와 산업계의 지원을 받도록 노력한다’는 미션이 명기돼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계약서 내용과 일반의 기대에 비추어 볼 때 로플린 총장의 구상은 ‘한국 축구를 발전시켜 달라(이공계를 활성화시켜 달라)’고 감독을 영입했더니 ‘축구보다는 미식축구가 선진 미국에서는 인기이니 종목을 바꾸자(인기학과 학부를 신설하자)’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로플린 총장 측 반응=로플린 총장은 교수들이 질의한 7개 항목에 대해 “(교수들의 의견은) 적절하지 않다”며 반대 입장을 표시했다.

인기 위주의 학과 신설이 이공계 연구중심 대학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는 교수들의 의견에 대해 로플린 총장은 서면답변서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인기 하락은 시장의 효과”라며 “시장에 적응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시장’은 학생과 학부모”라고 덧붙였다.

로플린 총장은 이달 초 신년사에서는 “변화가 필요한 시기”라며 “여러분이 개혁에 따라 달라”고 당부했다.

▽정부 입장=과학기술부 관계자는 “로플린 총장의 구상에 대한 입장 정리가 끝나지 않아 뭐라 평가하기 어렵다”며 “목표는 KAIST를 세계 최고의 이공계 중심 대학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로플린 구상▼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물리학 전공)로 재직하다 지난해 7월 영입된 로플린 총장이 그해 12월 14일 발표한 내용. 학교 정원을 현재 7000명에서 2만 명으로 늘리고 연간 600만 원 정도의 등록금을 받으며 학부에 의대, 법대, 경영대학원(MBA) 예비반을 만들어 학부 중심으로 운영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