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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예지원, 그녀의 4색 성욕의 정체

입력 | 2004-11-24 18:16:00

창녀같은 처녀


정체불명의 여자 순이(예지원)를 한 지붕 아래 사는 아버지와 세 아들이 서로 쟁취하려 한다는 내용의 영화 ‘귀여워’. 제 아무리 패륜의 정점에 서 있다고 해도 어떻게 한 여자를 두고 아버지는 물론 세 형제가? 알고 보니 더 ‘야한’ 이유가 있었다. 그 여자는 바로 세 형제의 ‘엄마’이기 때문이었다.

○순이의 성욕의 정체

결론부터 말해, 순이는 네 남자를 두루 사랑하지만 그녀의 성욕은 존재하지 않는다. 순이는 남자들의 성욕이 100% 투사된 가상의 여성상일 뿐이다. “모든 남자가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어”란 순이의 말은 ‘모든 남자에 대해 열리는 여자였으면 좋겠다’는 남자들의 환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아버지 장수로(장선우)와 첫날밤을 치른 순이의 외양, 즉 창녀촌 스타일의 통속적 웨딩드레스 차림 위에 ‘첫경험’의 징표로 흩어진 혈흔은 몰지각한 남성들의 꿈인 ‘창녀 같은 처녀’를 형상화한 이미지다. 순이는 ‘유혹’하지도 ‘거부’하지도 않는다. 그냥 네 남자의 요구를 모두 들어줄 뿐. 결국 ‘귀여워’는 남성들을 위한 SF영화다. (※SF=Sex Fantasy)

○순이의 정체

알고 보면, 순이는 세 형제의 ‘엄마’다. 결국엔 아버지인 장수로와 순이가 결혼하는 라스트 신을 통해 영화는 ‘순이가 엄마임’을 드러낸다. 그런데 세 형제는 아빠의 여자인 엄마를 서로 갖기 위해 발버둥친다. 이들은 엄마에 대한 성적 욕망을 감추지 못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환자들인 셈이다. 이들 삼형제는 ‘나도 아빠 같은 남자가 돼 엄마 같은 여자를 얻을 거야’란 동일시를 통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계속 엄마를 호시탐탐 노린다. 이유는? 아버지가 삼형제를 욕하는 말인 “호로새끼들”에 그 진실이 숨겨져 있다. 아버지 말마따나 세 아들은 모두 ‘배가 다른 종자’인 것이다. 막내 ‘뭐시기’(정재영)가 순이의 젖가슴에 집착하고 가슴을 만져보려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순이의 모성(母性)을 부각시키는 장치. 순이는 결국 엄마에 대한 성적 판타지라는 금기를 투사한 결과물인 셈이다.

○삼형제의 정체

세 아들은 종국엔 순이가 아버지와 결혼함에 따라 ‘엄마’를 차지하지 못한다. 좌절된 마음을 세 형제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해소하거나 탈출한다. 큰아들인 ‘후까시 963’(김석훈)은 꿈에 그리던 오토바이인 브이맥스를 몰고 (지금은 철거된) 서울 청계 고가도로를 질주한다. 결국 그가 바라던 대로 “점점 모든 세상이 타원형으로 모아진다”. 그의 오토바이는 그 타원형을 뚫고 돌진한다. 엄마의 자궁으로부터의 탈출인 셈이다. 실연의 아픔을 딛고 위대한 장남은, 정자보다 훨씬 빠른 속도의 오토바이를 타고 자궁을 뛰쳐나오는 방식으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이겨낸다.

○아버지의 정체

서울 황학동의 무너져 가는 아파트는 발기불능인 아버지의 힘없는 성기를 상징하는 동시에 형편없이 무너지는 가부장적 권위를 은유한다. 결국 사타구니를 주물럭거리며 “이놈이 서야 할 텐데”하고 노심초사하는 박수무당 아버지의 모습은 자신의 여자조차 지키기 힘든 가부장의 다해 가는 생명을 상징한다. 결국 아버지는 순이와 첫날밤을 보낸 후 지구상에서 증발해 버린다. 아들 세대를 위해 엄마를 남긴 채 ‘사라져 주는’ 것이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