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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탄생은…1987년 국민항쟁 결과로 만들어져

입력 | 2004-10-28 18:42:00


여권 일각에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1987년 6월 항쟁 직후 헌법 개정을 통해 탄생한 헌재의 설립 취지에 비추어 설득력이 크게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헌재가 헌법 수호 기관으로 자리 잡게 된 데는 무엇보다 ‘정치권력이 헌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견제해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라는 논거에서다.

결국 정치권이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국회에서 위헌성을 내포하고 있는 법률을 만들었을 때 이에 대한 최종적인 심판을 해 이를 견제하는 것이 헌재의 설립 취지라는 얘기다.

당시 헌법위원회가 있었지만 상임위원이 한 사람뿐인 데다 법원의 위헌제청이 있는 경우에만 심판을 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위헌 결정을 내린 사례가 거의 없는 유명무실한 기구였다.

국민적인 개헌 열망에 부응해 야당에선 독립적인 헌법재판소 설치를 요구했고, 여당인 민정당은 대법원에 위헌법률심사권을 주자는 안을 놓고 협상을 벌였다.

그러나 6·29선언 이후 당시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은 민정당의 개헌안을 보고 받고 “대법원이 위헌법률심사권을 갖게 되면 민주적 기본질서를 해친다는 명분으로 정당해산권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중립적인 위치에서 재판을 해야 할 사법부가 정치적인 문제에 휩쓸릴 우려가 있다”며 헌재 설립 쪽으로 방향을 틀도록 지시했다.

당시 여야는 개헌을 위해 8인 정치회담을 구성하고 헌재 설립안을 논의했다.

협상에 참여했던 현경대(玄敬大) 전 의원은 “의회에서의 담합과 다수의 횡포에 의한 잘못된 입법을 막는다는 차원에서 헌재 설립 아이디어는 야당이 더 적극 찬성했다”며 “권력에 휘둘리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임기를 6년으로 해 대통령 임기와 겹치지 않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 같은 헌재 탄생 경위에 비추어 국회는 법률 제정시 위헌을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지, 위헌 결정을 헌재가 내렸다고 시비를 거는 것은 헌법의 기본 틀을 부정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협상 멤버였던 김종인(金鍾仁·민주당) 의원도 “헌재가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은 헌재의 설립 근거에 정확히 부합하는 사례”라며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때 표를 얻기 위해 수도 이전 문제를 거론했고, 최병렬(崔秉烈) 한나라당 전 대표도 충청권 표를 얻기 위해 위헌적인 법률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여야가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 위헌적인 법률을 만든 것을 헌재가 바로잡은 셈”이라고 말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