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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월드워치]만일 일본이 이라크라면…

입력 | 2004-10-12 19:15:00

황궁이 로켓포 공격받고


“1주일간 워싱턴 뉴욕 등 대도시에서 자동차 폭발, 로켓탄, 자동소총, 공중폭격에 의해 3300명이 숨지는 일이 계속된다면?”

“중무장한 27만5000명의 게릴라가 시애틀 라스베이거스 샌프란시스코를 점령했다면?”

“민병대를 소탕한다며 알링턴 국립묘지를 미군 전폭기가 매일 폭격해 묘 수천기가 파괴되고 베트남전 참전용사비가 박살난다면?”

미국 미시간대 후안 콜 교수가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만일 미국이 이라크라면’이란 글이 미국 일본의 네티즌들에게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인용한 대목들은 미군의 팔루자 봉쇄나 메흐디 민병대 소탕을 목표로 한 시아파 성지 나자프 공습을 패러디한 것이다.

중동 근현대사를 전공한 사학자로 9·11테러 이후 언론매체에도 자주 등장했던 콜 교수는 이라크의 비참한 현실을 호도하며 침공의 정당성만 강조하는 정부의 태도에 분노해 글을 썼다고 한다.

콜 교수의 글은 ‘CNN에서는 볼 수 없는 이라크의 진실’ 등의 제목으로 각국어로 번역되는가 하면 ‘만일 일본이 이라크라면’ 식의 패러디를 통해 확산되고 있다.

콜 교수가 이 글을 올린 것은 9월 23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이라크 상황이 개선되고 있다는 내용의 연설을 하자 이를 공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연설 직전 1주일간 이라크에서 연합군과의 교전이나 자폭공격, 공습으로 숨진 이라크인은 약 300명. 미국 인구는 이라크의 11배가량이므로 미국이 이라크라면 약 3300명이 숨진 셈이다. 매주 이만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이라크 상황은 개선되고 있으며 이라크는 민주주의와 자유 실현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그는 반문한다.

그는 미국 언론들의 이라크 현지 보도에 대해서도 ‘치안이 불안해 워싱턴과 뉴욕의 몇 개 호텔에 갇혀 있는 기자들이 샌프란시스코 덴버 등 전국 주요 도시가 중무장 게릴라에 의해 점령된 상황을 전하는 격’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 글은 일본에서 일본어 패러디 판으로 바뀌어 미국에서보다 더 큰 반향을 일으켰다.

“도쿄의 황궁, 국회의사당 등이 매일 로켓포 공격을 받는다면? 1주일간 1500명의 일본인이 대도시에서 기관총과 수류탄 공격으로 숨졌다면? 미군 전폭기가 테러리스트를 잡는다며 매일 밤 폭격해 노약자들이 죽는다면? 이런 상황에서 ‘일본 침략은 정당했다. 일본 상황은 개선되고 있으며 일본인들은 민주화 진전에 기뻐하고 있다’고 한다면?”

‘팬더’란 이름의 일본 네티즌은 “1년 사이에 총리, 외상, 법무상이 암살당하고 미 점령군이 제멋대로 허수아비 같은 일본 총리를 앉혀놓는다면?”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