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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마당]홍준표/치료선택권 누구에게 있나

입력 | 2004-07-08 18:50:00


자신의 건강에 대한 선택의 자유와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치료를 받든지 또는 거부할 권리는 나에게 있는가? 치료를 받는다면 그것을 선택할 권리가 있는가? 언뜻 들으면 당연히 환자인 ‘나’에게 그런 권리가 있다고 하겠지만 최근 대법원 판결에 의하면 환자가 사망할 것을 알면서도 보호자의 요구에 따라 그를 퇴원시킨 의사에게는 살인방조죄가 성립된다고 한다. 이에 따라 관행적으로 이뤄져 온, 보호자 요구에 따른 퇴원 조치가 살인방조 혹은 직무유기의 중벌을 피할 수 없으리라는 우려가 의료계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나는 외래에서 하루에도 수차례씩 생사의 미래가 불투명한 경우를 접한다. 또 입원실에서 장차 회복의 가능성이 희박한 사람들도 본다. 이들 중 더러는 나머지 인생을 사랑하는 가족과 보내기 위해 더 이상 힘든 치료를 거부하기도 하고, 더러는 집에서 임종하기를 원하기도 한다. 대법원 판결에 의하면 나도 살인방조죄를 범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경제적인 여건을 떠나 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나머지 인생을 가족과 함께 보내기를 희망하는 환자 혹은 보호자의 요구이기에 나는 거부할 수 없다. 나는 이 환자가 더 이상 치료 받지 않고 투약을 거부하면 오래 연명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설명하고 이해시키지만 남은 인생을 투약 등의 고통 없이 편한 마음으로 정리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있다. 법적으로 살인방조 혹은 자살방조가 될지 모르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나는 분명 양심에 어긋나지 않게 환자에게 유익한 길을 함께 추구하고 있다고 믿는다.

선택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며 이 자유를 통해 얻은 결과에 대해선 분명 선택을 한 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 물론 미성년자, 정신장애인, 혼수상태의 경우에는 법적 대리인, 즉 보호자가 그 선택을 대신 하겠지만 이 역시 보호자의 책임일 것이다. 의사는 그 선택을 하는 과정에 조언과 예후에 대한 설명을 하는 조연이지 환자 삶의 주연일 수 없다. 우리는 환자와 보호자의 선택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택에도 분명 예외는 있다. 악의가 섞인 선택이라든지, 응급상황의 선택이 그러하다. 이러한 것은 법적으로 정리되어야 할 부분이다. 분초를 다투며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에 대해, 차후에 발생할 수 있는 법적 책임을 피하느라 보호자를 찾아 동의를 얻기 위해 수술을 미룬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상황에 따른 환자의 선택이 존중되듯 위급한 상황에 따른 의사의 선택과 처치도 마땅히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

최근 부모의 수술 결정 지체 등에 따른 사망사고의 책임 일부를 의사에게 지웠다는 보도가 있었다. 의사가 응급으로 필요해 임의로 시행한 시술이 과연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인지 먼저 정리돼야 한다.

생사기로에 처한 환자에게 행해지는 선택 하나하나는, 그것이 환자의 선택이건 의사의 선택이건 예후에 바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그 선택권은 누구에게 있으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악의 없이 혹은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행해지는 선택은 존중돼야 하는 것이 아닌가.

홍준표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