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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마당]심경욱/6·25기념비 하나 없는 서울거리

입력 | 2004-06-27 18:54:00


올해 6월 25일은 6·25전쟁이 발발한 지 54년째 되는 날이었다.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날이지만 왠지 떳떳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 의미를 되새겨본 것이 언제인가 싶을 정도로 잊고 지낸 탓이리라. 그래도 올해는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다녀왔다. 필자가 재직하는 연구원이 단체로 참배한 덕분에 현충탑 내부의 위패봉안관도 둘러볼 수 있었다. 그곳엔 사랑하는 남편과 오빠, 그리고 아버지들의 이름이 가득했다. 얼마나 많은 가족이 그 이름들을 쓰다듬으며 울음을 삼켰을까.

6월 호국보훈의 달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어디선가 젊은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노란색으로 머리를 물들이고 배꼽티를 입은 10대들이 깔깔대며 지나간다. 얼핏 시샘이 났다. 30년 전 그 나이 때 우리의 6월은 현충일의 묵념으로 시작해 6·25를 기념하는 백일장으로 끝나곤 했다. 얼굴도 모르는 일선 장병들에게 위문편지도 숱하게 썼다. 도덕시간에는 부하들을 살리려 수류탄을 가슴에 안고 산화한 강재구 소령을 알았고, 등굣길에 목발 짚고 구걸하는 상이용사들과 마주치는 일도 흔했다. 해질 무렵 울리는 애국가에 걸음을 멈추고 태극기에 경례하는 것이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우리 세대는 내키지 않는 일들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우리는 민주화와 경제발전이 이뤄지면 ‘안보 우선주의’에 짓눌린 사회도 바뀔 수 있으리라 믿었다.

20대 후반 유럽에 유학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국가와 안보, 전쟁과 영웅이 유럽 어디서나 제대로 평가받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라와 민족을 지키다 희생한 이들은 크고 작은 도시의 광장이나 대로에 이름과 동상을 남겼고, 수많은 무명용사 기념비와 전쟁기념관이 그들의 업적을 기리고 있었다. 생맥주 몇 잔에 취기가 돌면 ‘라 마르세예즈’를 목청 높여 부르던 파리의 대학 동기들, 자전거로 노르망디 해안까지 달려와 그곳에서 죽어간 수많은 독일군 병사를 기억하던 쾰른의 대학생들은 내겐 큰 놀라움이었다. 그로부터 10여년 뒤 방문한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의 전쟁기념관에서는 50년 전 독소전쟁과 미국에 끝내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소련 역사를 아이들에게 또박또박 설명하던 아버지들을 볼 수 있었다.

이제 40대 중반에 문득 둘러본 우리 사회의 풍경은 이런 기억들과 너무나 거리가 멀다. 오늘의 ‘한국’을 있게 한 금세기의 수많은 영웅과 그들의 희생은 이미 잊어도 되는 역사가 되어버린 듯하다. 서울 거리 어디를 둘러봐도 그들을 기억하게 하는 동상 하나 발견하기 힘들다. 이 땅을 지킨 호국영령들과 그들의 역사를 일깨우던 자리는 이제 민주화운동의 역사와 기록들이 대신하고 있다.

이 땅의 젊은 세대는 호국이니 보훈이니 하는 말을 상기시킬 그 어떤 것들로부터도 거의 단절된 채 살고 있다. 그들의 안보불감증을 그들만의 잘못으로 돌리기도 어렵다. 오히려 그들이 호국정신을 느끼고 깨닫도록 할 계기를 만드는 데 소홀했던 중간 세대의 잘못이 더 큰 것은 아닐까. 역사의 흔적이 거의 사라져버린 6월, 그 6월도 며칠 후면 끝이다.

심경욱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