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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이수형/‘불량만두’ 이름 못 밝히는 이유

입력 | 2004-06-08 18:32:00


쓰레기 수준의 자투리 무를 원재료로 해 생산된 만두가 대량 유통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본사에는 해당 업체가 어떤 곳인지 밝히라는 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일부 독자들은 “해당 만두소를 사용한 업체의 이름을 이니셜 속에 숨기는 이유가 뭐냐”고 거세게 항의하기도 한다.

이 같은 항의에 언론은 무력하기만 하다. ‘법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협박 때문이다. 일부 업체 관계자들은 업체 이름을 공개할 경우 바로 형사고소와 민사소송을 하겠다고 협박했다.

언론은 이들의 협박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소송을 당해 억대의 배상금을 물어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등에서는 이 같은 ‘공적 관심사’에 대한 보도는 대체로 그에 따른 법적 책임을 면해주지만, 우리의 법원은 그렇게 관대하지 않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달 25일 경찰이 수사 초기단계에서 피의사실을 언론에 공표해 피의자가 명예를 훼손당했다면 국가가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수사 초기단계에서 수사기관이 서둘러 발표할 필요성이 있다고 볼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판결대로라면 “언론기관이 서둘러 보도할 필요성”도 없다.

경찰도 이를 의식한 듯 불량 만두소 제조업체 적발 사실을 공개하면서 만두소를 쓴 만두 제조업체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법원은 2001년 11월 그 유명한 ‘포르말린’ 사건 판결에서 언론 보도가 공익에 관한 것이고 신뢰도가 높은 경우 손해배상책임이 없다고 하긴 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소와 동시에 이루어진 검찰의 공식 발표를 근거로 한 것’에 국한된 것이었다. 검찰의 발표와 다른 사실을 추가로 취재 보도한 언론사에 대해서는 배상 판결이 내려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업체들의 실명을 보도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식품뿐만 아니다. 모든 불량품 제조업체가 다 마찬가지다. 문제는 언론이 이들 제조업체를 익명으로 보호함으로써 양심적인 제조업체와 무수한 소비자들이 피해를 본다는 점이다.

이번의 경우 가장 좋은 해결책은 불량 만두소를 사용한 업체들이 스스로 나서 소비자들에게 사과하고 해당 제품을 회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업체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라’고 강제하는 법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도덕적 해이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실상의 불법’ 앞에 ‘형식적 합법’은 무력하기만 하다.

이수형기자 so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