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인의 신용도를 반영한 ‘개인 신용평가 점수’가 금융거래뿐 아니라 주택 및 자동차 구입이나 결혼 등 국민의 실생활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앞으로 2∼3년 안에 기업의 채용이나 인사배치, 이민 등에도 신용평가 점수가 활용돼 개인 신용도가 경제 및 사회생활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개인 신용평가가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과 신용평가 산업의 현황과 전망을 2회에 걸쳐 점검한다.》
“회원으로 가입하려면 개인 신용평가서를 제출해 주십시오.”
인테리어 관련 개인사업체를 하는 노총각 정모씨(35)는 며칠 전 결혼정보업체인 ㈜좋은 친구 선우의 회원으로 가입하려다가 상담원에게서 이런 요청을 받았다.
선우 이웅진(李雄進) 대표이사는 “대기업 사원 등 신분이 확실한 경우는 예외지만 신원을 확인하기 힘들면 신용평가서를 요구하고 있다”면서 “개인 부채가 많거나 신용 상태에 문제가 있으면 회원 가입을 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 신용평가 점수(CB점수)의 이용이 확산되면서 신용등급이 나쁜 사람은 금융거래는 물론 결혼 취업 할부구매 등 실생활 구석구석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CB점수는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은행 카드사 할부금융회사 등은 거래상 필요에 따라 CB점수를 조회할 수 있다. 개인의 경우 본인에 한해 일정한 수수료를 내고 열람할 수 있다.
▽CB점수가 개인의 인생을 좌우한다=1990년대 말 미국 뉴욕의 미주영업본부에서 근무한 우리은행의 조성권(趙成權) 공보팀장은 “명색이 은행원인데 미국 내에서 쌓인 신용정보가 없다는 이유로 신용카드 발급은커녕 개인 계좌도 개설하기 어려웠다”며 “결국 미국측 거래은행의 보증을 받아 카드를 발급받았다”고 말했다.
신용평가회사(CB·크레디트 뷰로)에 의한 개인 신용평가가 일반화된 미국의 사례를 보면 CB점수 활용의 확산이 개인의 경제, 사회생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미국에서는 CB점수에 문제가 있으면 신용카드 발급은 물론이고 주택임대나 일반전화, 휴대전화의 개통도 안 된다. 중고차를 살 때도 신용도가 나쁘면 별도의 증빙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일부 기업에서는 취업이나 인사배치 때도 CB점수를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적으로 신용등급을 공유하려는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어 머지않아 한국에서 쌓은 CB점수가 이민이나 유학을 떠나도 따라붙을 전망이다.
▽국내 CB점수 활용 급속 확산=국내 금융회사들은 CB점수를 통한 고객의 신용관리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달 말 장기 주택담보대출(모기지론)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한 주택금융공사는 신용평가회사가 제공하는 CB점수를 살펴 대출 여부를 결정한다. 자동차 할부금융회사인 현대캐피탈은 이미 현대·기아차를 사려는 고객의 CB점수를 조회해 돈을 빌려줄 것인지를 결정하고 있다. 삼성생명 등 보험회사도 약관 및 신용대출에서 CB점수를 활용한다.
CB점수를 고객관리 및 전략 수립에 이용하려는 시중은행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최희갑(崔熙甲) 수석연구원은 “은행권이 가계대출 부실과 신용불량자 문제를 겪은 근본적인 원인은 개인 신용평가에 따른 신용관리 시스템이 취약했기 때문”이라면서 “앞으로 금융회사의 성패는 CB점수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신용 어떻게 관리할까=한국신용정보 남욱(南旭) CB사업본부장은 “CB점수가 자신의 소득 규모나 재산과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득이 적더라도 연체한 적이 없고 금융거래가 많으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것.
개인 신용관리 포인트의 핵심은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신용거래를 삼가는 것이다. 필요 이상으로 신용카드를 많이 만들거나 여러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으면 신용 점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연체해서는 안 된다.
신용평가회사의 회원으로 등록해 자신의 신용등급을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현재 한국신용정보는 ‘마이크레딧’(www.mycredit.co.kr), 한국신용평가정보는 ‘크레딧뱅크’(www.creditbank.co.kr)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 가입해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고 일정 수수료를 지불하면 자신의 신용등급과 자신이 모르고 있던 계좌정보 및 연체정보까지 확인할 수 있다.
▽크레디트 뷰로(CB)-개인의 신용 명세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 보유 가공 판매하는 신용평가회사. 전국은행연합회나 협약을 맺은 금융회사로부터 받은 각 개인의 금융거래 정보를 분석 가공해 신용평가 점수로 환산, 필요로 하는 곳에 판매한다.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