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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노여진/친절한 사람 손해보기 쉽네요

입력 | 2004-03-17 19:21:00


직장을 그만둔 뒤 집에서 살림을 하며 뒤늦게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낮에 주로 연습하는데 연습량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파트 아래층 아주머니가 찾아와 거세게 화를 냈다. “귀가 멍멍할 정도다” “방음장치를 하라” “무식하다”는 등으로 소리를 질렀다. 이웃에 불편을 끼친 점을 알기에 나는 연방 “죄송하다”고 말했다. 위아래 층에 살면서 싸울 수도 없는 일이라는 생각에 그분의 목소리가 작아질 때까지 사과를 했다.

그 사건으로 마음의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았다. 차 한잔하면서 조용히 얘기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웃과 대화가 없는 아파트 문화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상처가 아물어 갈 때쯤 길에서 그 아주머니와 우연히 마주쳤다. 나를 보자마자 손을 잡으면서 “저번에는 너무나 미안했다”며 사과했다. 당시 그분의 집안 상황이 좋지 않아서 신경이 많이 예민했다고 이해를 구했다.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나에게 화를 냈다는 말 같기도 했지만 나에게 화낸 일을 많이 반성하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 얘기 중에 황당한 대목이 있었다. 내가 평소에 만만해 보였다는 것이었다. 늘 친절하게 인사를 잘하는 모습이 순하고 착해 보여서 자기도 모르게 크게 화를 냈다는 설명이었다.

19년간 은행에 근무하면서 고객을 대할 때 늘 먼저 인사하는 습관이 몸에 배서 엘리베이터에서나 길에서 이웃을 만나면 먼저 웃으면서 인사를 했는데, 그 모습이 만만해 보였다니.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나 잠시 혼돈이 왔다.

‘평소 인상을 쓰고 다녔다면 그런 일은 당하지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쪽만 친절하다고 해서 세상이 밝아지고, 기분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남의 친절함을 제대로 받아 주는 자세도 중요하다.

노여진 주부·경기 광명시 철산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