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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경제수장들 "백악관 토론문화가 성패 갈랐다"

입력 | 2004-01-18 17:14:00


로버트 루빈과 폴 오닐. 미국 빌 클린턴 행정부와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각각 ‘경제수장(首長)’인 재무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최근 이들은 각기 자신의 재무장관 시절을 되돌아보는 자서전을 내놓으면서 다시 한번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루빈이 지난해 11월 ‘불확실한 세계에서: 월가에서 워싱턴까지의 어려웠던 선택들’이라는 자서전을 내놓은 데 이어 오닐은 이달 초 ‘충성의 대가(代價)’라는 회고록을 출간했다.

최근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자서전 심층 분석을 통해 두 장관의 성패를 가른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배경’을 꼽았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1994년부터 99년까지 재무장관을 지낸 루빈은 90년대 중반 미국 경제호황을 이끈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재무장관이 되기 전 루빈은 유력 금융회사인 골드만삭스의 회장이었다. 미국 월가의 금융업체들은 대부분 폐쇄적인 합자회사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에 이해관계 조정이 리더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힌다. 루빈은 월가에서 배운 ‘조정의 기술’을 백악관과 의회를 상대할 때 적극 활용했다.

반면 오닐은 2001년1월 부시 행정부 출범과 함께 재무장관에 올랐으나 1년11개월 만에 ‘의견차이’로 물러났다. 세계 최대 알루미늄 제조업체 알코아의 회장을 지낸 오닐은 ‘제왕적 최고경영자(CEO)’의 전형. 동료나 부하 직원들의 의견을 듣기보다는 명령을 내리는 데만 익숙했던 그는 타협을 중시하는 워싱턴의 권력체계에 융화되지 못했다.

루빈과 오닐이 재무장관을 지냈을 당시 백악관의 문화가 판이하게 달랐다는 점도 이들의 성패를 가르는 데 일조했다.

클린턴 행정부에서는 지적인 토론의 문화가 살아있었다. 생각이 다른 장관과 참모들이 자신의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면서 의견의 차이를 줄여나갔다. 루빈은 중산층 세금 감면을 밀고나가려던 클린턴 전 대통령을 설득해 감세 정책을 철회하도록 했다.

반면 부시 행정부는 토론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 오닐은 ‘내 의견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장관들에게 둘러싸인 부시 대통령을 빗대 ‘청각장애인들이 가득한 방에 있는 시각장애인’이라고 표현했다. 오닐도 부시 대통령의 감세정책을 반대했으나 찬성파들에 눌려 빛을 보지 못했다.

최근 부시 행정부가 대(對)이라크 정책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과 사회보장 정책에서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것은 백악관의 독선과 토론문화 부재에서 기인한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지적했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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