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해외에서 보니]이준희/유쾌한 한국뉴스 듣고 싶어

입력 | 2004-01-16 18:40:00


일본은 1월 두 번째 월요일이 ‘성인의 날’로 공휴일이다. 만 20세 성인이 되는 젊은이들을 축하해주는 행사가 여기저기서 열린다. 하지만 올해 성인의 날인 12일 일본에선 반갑지 않은 뉴스가 있었다.

농림수산성이 이날 지난해 12월 말 야마구치현에서 닭의 집단폐사가 발생했고 2주에 걸친 정밀조사 결과 조류독감으로 확인됐다고 공개했던 것이다. 바이러스는 한국에서 검출된 것과 비슷하게 철새 등에 의해 전파된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일본에 삼계탕 등 닭과 관련된 제품을 수입해 판매해 온 필자로서는 큰 관심사였다. 한국의 조류독감 사태 때 한국 내의 상황과 비교해 보면서 그 전개과정이 너무 다르다는 생각에 착잡한 느낌이 들었다.

한국은 집단폐사 직후부터 ‘조류독감 확실’ 등의 보도가 이어졌다. 그에 반해 일본에서는 집단폐사 후 바이러스 검출 확인까지 2주 동안 어떤 언론매체에도 조류독감이란 말이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과연 일본의 세균전문가는 능력이 없어서 집단폐사 원인 파악에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린 것일까. 그렇지 않다. 성급하게 알려서 국익에 도움이 될 게 없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 생활 10여년 동안 이와 비슷한 경험을 자주했다. 한일 양국에 거의 동시에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도 양국 언론의 보도 양태는 사뭇 달랐다.

그때마다 양국의 문화 차이를 생각했다. 사건 발생 즉시 이를 보도하는 한국의 언론 풍토에는 한국인의 기질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좋게 말하면 솔직하다고 할 것이요,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앞뒤 재지 않고 우선 뛰어들고 보는 경향이 그것이다.

그러다보니 수많은 의견 충돌과 갈등이 빚어진다. 우리는 국가 존망의 위기에서도 내부 싸움에 몰두했던 뼈아픈 과거를 갖고 있다. 갑신정변이 일어난 지 올해로 120년. 삼일천하의 주인공 김옥균은 일본 땅에서 망명생활을 하다 자객의 손에 숨지면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우리는 그렇게 수구와 개혁의 공방 속에 국운이 기울어 끝내 망국의 비운을 맞았다.

요즘도 한국의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보수와 진보, ‘자주외교’와 ‘실리외교’ 등의 마찰로 시끄럽다. 120년 세월의 가르침도 쓸모없는 것인가.

그렇지만 희망은 있다. 지금 한국은 갑신정변 때와는 크게 다르다. 경제가 어렵다지만 국가재정은 아직 건전하고, 고급 노동력도 넘쳐난다. 이 돈과 인재를 잘 조화시키고 활용하면 재도약의 동력을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다.

전제가 있다.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고 보자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 모두가 한걸음 물러나 차분해져야 한다. 세대와 이념으로 갈라진 사회를 통합할 탕평책도 필요하다.

그 ‘화합’의 키워드는 국익이어야 한다. 일본의 언론매체는 무서울 정도로 국익을 생각하고, 일본 국민은 이를 당연시한다. 그런 태도가 옳은가 아닌가는 별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일본식’에서 배울 점이 분명히 있다. 외국에 살면서 그 나라 매체를 통해 유쾌하지 못한 한국 관련 뉴스를 더 이상 듣지 않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이준희 (주)보리재팬 대표·일본 오사카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