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화두(話頭)는 뭐니뭐니 해도 일자리 창출이다. 청년 실업자가 넘쳐 나고, 일자리가 늘어나기는커녕 오히려 줄고 있기 때문이다. 노(勞) 사(使) 정(政)은 올해 노사정위원회의 주요 의제를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으로 정하고 이를 이끌어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일자리 창출엔 노사관계 안정이 필수적이다. 이에 따라 본보는 14일 김성태(金聖泰) 한국노총 사무총장과 조남홍(趙南弘)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박길상(朴吉祥) 노동부 차관 등 노사정 대표를 초청해 긴급 좌담회를 가졌다. 일자리 창출과 올해 노사관계 전망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1997년부터 2003년까지 공익대표로 노사정위에서 활동한 이원덕(李源德) 한국노동연구원장이 사회를 맡았다.》
#일자리 만들기에 노사가 협력해야
참석자들은 일자리 창출이 절실하다는 총론에는 한목소리를 냈다.
“고용불안은 신용불안→소비위축→경기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초래하지만 일자리 창출은 사회를 안정시키고 경제를 발전시키는 선순환의 출발점이다. 일자리는 하늘에서 주는 선물이 아니다. 우리가 만들 과제다.”(이원덕 한국노동연구원장)
“사회협약을 체결한다고 없던 일자리가 당장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노사정이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한다.”(김성태 한국노총 사무총장)
“노사정이 심각한 상황을 함께 인식한 것만도 큰 진전이다.”(박길상 노동부 차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해 노사가 적극 협력해야 한다.”(조남홍 경총 부회장)
하지만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에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가에 대한 각론에는 의견이 달랐다.
경영계는 임금 인상과 노사분규 자제 없는 일자리 창출은 어렵다는 입장인 반면 노동계는 경영의 투명성 확보가 전제되지 않는 상황에서 임금 안정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며 맞섰다.
“노동계는 우선 임금 안정에 협조해라. 성공작으로 평가받는 네덜란드 등 유럽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협약’의 핵심은 임금 억제와 일자리 나누기다.”(조 부회장)
“그 나라들은 우리와 달리 사회안전망이 잘 구축된 나라다. 임금 안정을 요구하기 전에 기업이 먼저 경영투명성을 확보해야 노동자가 신뢰할 수 있다.”(김 사무총장)
#고용창출 위해선 임금 안정이 필수
참석자들은 고용창출을 위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이 원장은 주5일 근무제 시행에 맞춰 대기업들은 초과 근로시간을 줄이고 그만큼 신규사원을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정근로시간(주 44시간)을 초과 근무하는 근로자가 870만명이나 된다. 초과 근로시간만 줄여도 일자리가 209만개나 생긴다. 또 장시간 근로로 인한 산재를 줄이고 체력 저하로 인한 생산성 하락도 막으며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어 일석삼조다.”
박 차관은 공공부문의 일자리 창출을 강조했다. “보건 복지 교육 등 공익부문에 여성과 고령자 등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사회적 일자리도 계속 늘리는 등 공공부문의 새로운 일자리를 적극 발굴할 것이다.”
조 부회장은 임금피크제, 성과급 임금제 등을 도입하면 고용촉발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보다 적극적으로 임금 안정을 주장했다.
그는 “최근 3년간 300인 이상 기업의 인건비 증가율은 연평균 11%다. 올해 이들 기업의 임금이 동결된다면 신규고용을 통해 청년실업률을 8%에서 3.5%로 떨어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논의의 초점이 임금 안정 쪽으로 모아지자 이 원장이 “노동계가 양보해야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협약이 체결될 수 있다”며 김 사무총장에게 결단을 요구했다.
시선이 김 사무총장에게 집중됐다. 그리고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김 사무총장은 굳은 표정으로 노동자의 임금 안정에 협조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대의를 위해 양보하겠다. 네덜란드 노동계도 임금 인상 자제에 합의했다. 그 후 위기를 극복해 임금도 계속 올라가고 좋은 일자리도 많이 생겼다. 특히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의 80% 이상만 되면 노동계도 전향적인 자세를 보일 것이다.”
김 사무총장의 ‘폭탄선언’을 들은 참석자들은 앞으로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 체결의 전망이 밝다고 보면서도 과연 현실로 이뤄질지에 대해선 물음표를 던졌다.
#민주노총 참여가 관건
참석자들은 사회협약이 성공하려면 민주노총의 참여가 필수라는 데 공감했다.
조 부회장은 “(민주노총에) 참여를 계속 촉구하지만 정 안 되면 한국노총의 의견을 참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대신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아도 따를 수밖에 없는 내용을 사회협약에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사관계 전망 어둡지만은 않다
참석자들은 올해 노사관계가 지난해보다 결코 좋지 않을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주5일 근무제,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 비정규직 문제 등을 둘러싸고 노사간 이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조 부회장은 노-정관계는 매우 불투명하고 노사관계는 혼란스러울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단체협약을 바꿔야 하는데 노사가 쉽게 합의할 가능성이 적어 현장에서 시끄러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사무총장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로드맵을 추진한다면 3월부터 (노사가)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참석자들은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이 체결될 경우 불신과 반목을 바탕으로 한 기존의 노사관계가 화합과 협력의 관계로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정리=이호갑기자 gdt@donga.com
사진=이훈구기자 ufo@donga.com
▼참석자 프로필▼
■박길상 노동부 차관
△노동부 노사정책국장
△〃 근로기준국장
△〃 고용정책실장
△대통령비서실 노사관계비서관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
■조남홍 경총 부회장
△상공부(현 산업자원부) 공보관, 이사관
△한국무역협회 전무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위원
△국제노동기구(ILO) 이사(현)
△노사정위원회 상무위원회 위원(〃)
■김성태 한국노총 사무총장
△KT링커스 노조 위원장
△전국정보통신노련 위원장
△한국노총 부위원장
△중앙노동위원회 노동자위원(현)
△노사정위원회 상무위원회 위원(〃)
■이원덕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노사정위원회 상무위원회 위원
△노동부 고용정책심의회 위원(현)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
△한국노사관계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