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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만이 살길이다]'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안된다

입력 | 2004-01-12 17:47:00


《LG그룹이 금융업을 포기하고 계열사를 동원해 LG카드를 지원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해 12월 16일.

LG화학의 주가는 전날의 5만2300원에서 4만8600원으로 하루 만에 7.07% 하락했고, LG전자 주가는 6만1100원에서 5만7100원으로 6.55% 떨어졌다. 한화증권의 홍춘욱 투자전략팀장은 “지주회사 제도란 부실기업 문제가 우량계열사로 옮아가지 않도록 하는 시스템”이라며 “지난해 3월 1일 LG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재편된 뒤 외국인 투자자들이 가졌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렇듯 제도와 운용이 따로 놀고, 계열사의 독립경영이 보장되지 않는 한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

▼관련기사▼

- "외국인 살기 편해야 투자 몰린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국제적 자본이 한국기업에 투자할 때

어느 정도 디스카운트(할인)해서 평가해야 한다는 데서 비롯된 말.》

○까닭 있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상품이 제값을 못 받을 때는 이유가 있게 마련.

투자자들은 기업의 불투명한 경영과 그 원인이 되는 지배구조의 문제에 가장 주목하고 있다. 돈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이윤’이라면 싫어하는 것은 ‘불투명성’이기 때문이다.

불투명한 기업이나 경제에는 투자가 끊어지든가, 투자가 이뤄져도 제값을 못 받는다.

기업지배구조개선지원센터가 최근 국내외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 일반투자자 등 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76%는 “한국의 주가 수준이 저(低)평가돼 있다”고 응답했다.

또 저평가의 가장 큰 원인으로 ‘국내 증시 투자자본의 단기성’(28%)과 ‘기업지배구조의 낙후성’(27%)을 꼽았다.

응답자의 절대다수인 93%는 투자대상 기업의 지배구조를 고려한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 전원은 지배구조 문제 등 저평가 요인이 개선된다면 투자를 늘리겠다고 답했으며 종합주가지수는 1,346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센터의 정광선 원장(중앙대 경영학과 교수)은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기업지배구조가 많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아직도 투자자들은 대주주가 기업경영권을 독단적으로 행사(83%)하거나 사외이사의 독립성에 문제가 있다(85%)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멀고 먼 지배구조 개선

LG카드 사태는 기업지배구조 문제가 투자자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됐다. LG그룹의 다른 계열사 주가까지 떨어진 것.

대형 디지털TV의 대표주자인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을 생산하는 삼성SDI는 2002년 말 6만8500원이던 주가가 지난해 말 14만500원으로 갑절로 올랐다.

그러나 LG전자 주가는 같은 기간 4만1300원에서 5만8600원으로 41% 오르는 데 그쳤다. 중국 특수(特需)로 석유화학업종이 각광을 받으면서 호남석유화학의 지난해 말 주가가 1년 전의 2만1700원에서 6만1500원으로 세 배로 오른 데 비해 이 업종의 대표기업 LG화학은 4만600원에서 5만5000원으로 35% 올랐을 뿐이다.

LG그룹은 지주회사 시스템을 내세워 카드문제가 여타 계열사로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지주회사 체제를 권장해 온 정부는 갑자기 태도가 달라져 LG그룹과 대주주에 부실의 책임을 물었다. 채권은행들도 LG그룹 대주주와 계열사의 지원을 내놓고 요구했다. ‘주주의 유한책임 원칙’은 오간 곳 없었다.

메릴린치증권 이원기 전무는 “실제 계열사 지원이 이뤄질 경우 겉과 속이 다른 지배구조 행태에 실망하는 외국인들의 매물이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LG 대주주들도 할 말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2003년 3월 카드사 부실 징후를 감지하자 주식을 매각하기 시작했다. 내부정보 이용이라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한 일. 이들이 정부 등의 요구에 굴복한 것도 이런 약점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국 경제 제값 받으려면

대주주 전횡, 불투명한 경영, 허위공시, 유령증자, 허술한 회계감독 및 신용평가, 엉성한 금융감독 등으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없앨 수 없다. 시장경제, 개방경제, 투명한 경제로 가야 한다. ‘원칙 있는 경제’가 필요한 것. 윤리경영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김일섭 이화여대 부총장·경영학)

여기다 북한 핵문제 등 지정학적 요인과 정부 및 정치의 후진성, 소모적 노사관계 등도 디스카운트의 매우 주요한 이유다.

이채원 동원투신 자문운용실 실장은 “디스카운트의 가장 큰 문제는 북한으로 대변되는 ‘컨트리 리스크’로, 해외에서는 한국을 ‘전쟁 중인 나라’로 알고 있는 경우까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정치의 경쟁력 역시 중대한 디스카운트 요인이다. 지난해 10월 말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03∼2004년 세계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세계 102개 국가 중 18위였다. 그러나 정부를 포함한 공공기관의 경쟁력은 전년에 비해 4단계 떨어진 36위에 그쳤으며 정치인에 대한 신뢰도는 42위로 더 낮은 수준이었다.

뇌물과 불법정치자금이 버젓이 오가는 방식으로는 경제의 원칙을 세울 수 없다.

한국금융연구원 최공필 선임연구위원은 “잠재성장률과 실제성장률의 차이가 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이며 그 핵심은 시스템 문제”라며 “이제 ‘사회 전체의 경쟁력 강화’로 투자의 개념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디스카운트를 줄이는 방법이라는 설명.

하지만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려는 성급한 노력이 자칫 또 다른 디스카운트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윤미경 연구위원은 “기업지배구조 개혁 등을 너무 조급하게 하다 실패할 경우 정책의 공신력을 훼손해 또 다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초래할 수 있다”면서 “외과수술 방식으로만 접근하기보다 설득과 사회적 합의를 통해 풀어 나가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