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곳곳에서 미군 및 다국적군과 저항세력간에 교전이 벌어지는 등 사실상의 전쟁 상태로 들어감에 따라 미 행정부는 주권 조기 이양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급선회하기 시작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사진)은 13일 백악관 기자간담회에서 “폴 브리머 이라크 최고행정관에게 이라크 정부 설립을 가속화할 계획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미 행정부의 계획대로 주권을 조기 이양하면 미 대선이 치러지는 내년 11월 이전에 이라크 점령 상태를 끝낼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이라크 남부 나시리야에서 치안유지를 맡았던 이라크 전투경찰 본부 병영이 12일 트럭 폭탄테러를 당해 폐허로 변했다. 전우들을 잃은 뒤 경계에 나선 이탈리아 병사의 표정이 심각하다. -나시리야= AP 연합
▽미국의 방향 선회=부시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브리머 행정관은 더 많은 이라크인들을 (정치에) 참여시키기를 원했으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는 13일 미 행정부가 내년 상반기 중 이라크에서 선거를 실시하고 임시정부를 세워 헌법을 제정하는 주권이양안을 마련했다고 전했다. 두 신문은 “이 같은 정책 선회는 이라크 저항세력의 공격이 거세짐에 따라 대미(對美) 적대감을 해소하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지금까지의 미국의 계획은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가 헌법을 제정하고 내년 말 선거를 치르되 헌법 제정 전에는 미군이 구성한 과도통치위 외의 어떤 정치세력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선택 대안=그러나 과도통치위가 최근 “당장 헌법을 제정하더라도 정통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며 선(先) 임시정부 구성을 지지한 데다 이라크 전역에서 반미 감정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백악관은 당초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백악관은 ‘주권 조기 이양’ 외에 구체적 정치 일정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다. 다만 미 언론들은 △먼저 총선거를 실시해 헌법을 제정할 새 지도체제를 구성하거나 △‘제헌 기능’을 갖춘 임시정부를 세워 헌법을 제정하게 한 뒤 항구적인 정부를 구성하는 두 가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현 과도통치위는 시아파가 득세하게 될 총선보다 선 임시정부 구성안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도 시아파가 선거에서 압승하면 이슬람 신정(神政)으로 돌아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제2차 전쟁=나시리야 주둔 이탈리아 군경 및 민간인 사망자는 18명으로 늘었다. 이라크 민간인 사망자도 13명으로 늘어 나시리야 차량 폭탄테러 전체 사망자는 모두 31명이 됐다. 미군은 이 사건이 발생한 지 몇 시간 뒤 중부 팔루자에서 저항세력과 교전을 벌여 6명을 사살하고 4명을 체포했고, 저항세력의 회합 장소로 전해진 바그다드 남부의 한 염색공장을 파괴했다고 밝혔다.
워싱턴 포스트는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저항세력의 공격과 관련해 “미군 수뇌부는 최근 공격이 사담 후세인 및 휘하 장성들이 준비해온 대규모 반격일지 모른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