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불황으로 가계가 어려워지면서 서민들이 병에 걸려도 병원비를 마련하지 못해 치료를 포기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자연히 병원비 체납액도 눈덩이처럼 불어나 진료비를 받아내려는 병원과 환자간의 지루한 줄다리기가 연일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병원에서 내몰리는 서민들=홀로 사글셋방에서 살아오던 김모씨(56·여)가 갑작스레 중풍으로 쓰러진 것은 올해 5월.
김씨는 의료급여 1종 대상자로 정부의 의료비 지원을 받지만 진료비가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여서 입원했던 병원에서 치료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퇴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서 병수발을 해주는 사람도 없이 수개월간 시름시름 앓아오던 김씨는 동네 주민의 도움으로 근처 종합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병원측에선 진료비 체납을 우려해 입원을 거절했다는 것.
결국 김씨는 정상적인 치료를 포기한 채 어려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처럼 중병에 걸렸을 때 당장 병원비가 없어 정부 지원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의 수는 기초생활수급자와 준빈곤층을 합쳐 400여만명.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올해 지역보험료 체납액이 9월 현재 이미 지난해 전체 수치를 1500억원이나 웃돌았다.
국립의료원 원무과 관계자는 “요즘 대형병원에서 거절당한 저소득층 환자나 행려환자들이 국립병원을 많이 찾는다”며 “특히 계절적인 요인이 겹쳐 행려환자들이 많이 찾고 있으나 이마저도 진료비 부담으로 일찍 퇴원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병원 체납금도 눈덩이=서울 강남 지역의 한 유명 종합병원의 경우 지금까지 퇴원 환자에게서 받지 못한 금액이 지난해 같은 시기에 비해 30%나 늘어나 무려 20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이 중 도저히 받을 가능성이 없는 악성미수금도 억대에 달한다.
다른 병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강북의 한 대학병원은 매년 5000여만원씩 발생하는 체납금 때문에 골치를 썩이고 있다. 입원 보증금도 받고 재산 압류에 소송도 불사하고 있지만 이미 3억원을 돌파한 악성 미수금이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이 병원 원무과 관계자는 “환자들이 몇 년씩 돈을 안 내고 입원해 있는 경우가 많은데 무조건 쫓아낼 수도 없어 고민”이라고 말했다.
전국 병원의 미수금은 따로 집계가 되지 않지만 대형병원은 악성미수금이 최소 수억원대에 이르고, 외곽의 중소병원도 수백만원의 체납금을 달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부실한 제도=병원비를 국가가 임시로 지급해주는 응급의료비 대불(代拂)제도가 있지만 홍보 부족으로 이용률이 극히 낮다.
의료급여제도 역시 본인부담 비율이 50% 이상이어서 정작 빈곤층에 부담이 크기는 마찬가지다. 또 일부 병원에서는 미수금 발생을 억제하기 위해 의료급여 환자를 아예 받지 않고 있다.
건강세상네트워크 조경애(趙慶愛) 대표는 “현행 제도에서는 부유층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국민들이 의료비 때문에 언제라도 하층민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며 “병원비 체납도 경기가 나쁠 때마다 되풀이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의료급여과 관계자는 “혜택을 받는 준빈곤층의 범위를 넓혀 만성 희귀질환자 등에 대한 의료비 지원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며 “이와 함께 건강보험의 장기 체납자 관리도 강화하는 등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