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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월드워치]美정부 신속대처… 강풍 피해 줄였다

입력 | 2003-09-21 17:54:00


미국 동부 지역을 강타한 허리케인 ‘이사벨’은 당초 예측보다 큰 재산 피해를 남겼다. 후유증도 쉽게 가시지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 예비조치로 인명피해만은 최소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전사태 주범은 나무=이사벨이 휩쓸고 지나간 동부 지역 곳곳은 사흘째 전기 공급이 끊겨 280만명 이상이 촛불로 생활하고 있다. 수도인 워싱턴의 일부 지역도 상황은 마찬가지. 도로 파손으로 곳곳이 통제되고 있으며 교통신호등이 들어오지 않는 곳도 부지기수다.

그러나 전기가 없는 상황에서도 시민들은 비교적 차분하게 생활하고 있다. 냉장고에 보관했던 육류와 냉동식품을 모두 꺼내 뒷마당에서 숯불구이 파티를 벌이는 여유까지 보이고 있다. 어떤 동네에서는 주민들이 모두 모여 냉장고 음식으로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시민들은 수돗물을 끓여 마시고 샤워를 삼가라는 안내방송에 충실히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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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 지역에는 유난히 오래된 나무들이 많다. 평소에 보기 좋던 이 무성한 나무들이 정전사태를 일으킨 주범이다. 폭풍에 쓰러지면서 주변의 전선을 끊어버렸기 때문.

광범위한 지역에서 전선이 끊겨 정전사태는 상당 기간 계속될 전망이다. 전기회사들은 피해가 없는 지역의 전기공까지 동원해 작업에 나섰지만 복구작업은 더딘 편이다.

▽치밀한 대비책=미국 재난대책의 최우선 목표는 인명피해 최소화. 대표적인 예가 지하철과 버스의 운행 중단이다. 18일 워싱턴지역의 풍속이 시속 56km(초속 16m)가 될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가 나오자 즉각 지하철 및 버스 운행이 중단됐다. 실제 관측된 풍속은 시속 40km(초속 11m)였다.

연방정부와 의회는 물론 워싱턴에 있는 대부분의 회사들이 휴무를 결정했다. 지하철과 버스로 출퇴근하는 30만명의 안전을 배려한 것. 시속 56km의 바람이 엄청난 것은 아니지만 안전상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지하철과 버스 운행 중단으로 수백만달러의 수입 감소가 예상된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과잉대응이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연방정부가 휴무하면서 체계적인 재난관리에 허점이 생겨 피해를 키웠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대중교통 운행 중단과 관공서 휴무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만반의 대비였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국과 다른 사망 원인=이사벨로 인한 사망자는 21일 현재 최소 30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적지 않은 피해지만 태풍 매미가 몰아쳤을 때 한국에서 발생한 120여명에 비하면 큰 차이를 보인다.

희생자 대부분은 빗길을 무리하게 달리다가 교통사고로 숨졌다. 일부는 넘어지는 나무에 집과 차량이 깔리는 바람에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가정용 소형 가스 발전기를 돌리다 일산화탄소에 중독돼 숨진 경우도 있다. 하지만 한국처럼 태풍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 집단으로 사고를 당한 경우는 없는 듯하다.

워싱턴=권순택특파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