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지칠 때도 된 것 같은데 ‘봉달이’는 여전히 쌩쌩하다.
42.195km 마라톤 풀코스 31번 도전에 30번 완주. 우승 9번에 준우승만도 6번. 다른 선수들 같으면 벌써 마라톤을 떠나고도 남았을 시점이지만 그는 여전히 달린다.
‘국민마라토너’ 이봉주(33·삼성전자). 지난달 30일 2003파리세계선수권대회 남자 마라톤에서 아쉽게 11위에 그친 그는 내년 올림픽 마라톤코스 답사차 바로 아테네로 달려갔다. 그는 ‘어제’를 생각하지 않는다. ‘내일’만을 생각한다.
귀국 다음날인 6일 서울올림픽공원에서 이봉주를 만났다.
"계속 달릴 겁니다." 지난달 열린 파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가 귀국해 휴식에 들어간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만난 그는 내년 아테네올림픽에도 출전해 금메달을 노려보겠다고 다짐했다. 김동주기자
● 언제나 아쉬운 레이스
“스피드 때문에 졌습니다. 파리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모로코의 조우아드 가리브가 31km지점에서 치고 나갔을 때 오버페이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결국 제 약점이 스피드라는 것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지난 1년동안 이 대회만을 준비해왔기 때문일까. 분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봉주는 지난해 아시아경기대회를 제패한 뒤 줄곧 세계선수권대회에 매달렸다. 4월 런던마라톤을 뛰었지만 컨디션 중간점검이었을 뿐이었다.
“흑인선수들과의 싸움은 역시 스피드입니다. 내년 아테네올림픽에서도 스피드가 없으면 금메달은 어려울 것 같아요. 1년 동안 스피드 보강에 전념할 생각입니다.”
‘이젠 나이가 들어 스피드를 늘리기는 어려운 것 아니냐’고 묻자 “스피드는 훈련하면 는다. 나이는 걸림돌이 될 수 없다”며 입술을 깨문다.
● 아직 팔팔해요
이봉주는 자동차로 치면 ‘폐차’할 시기가 지났다. 세계적인 유명 마라토너라고 해도 15회 정도 완주하면 은퇴하는 추세. 이봉주는 그 곱절을 뛰었다. 나이도 서른 중반이 다 돼 간다.
마라토너가 완주하려면 대회 40∼50일전부터 하루 30∼40km씩 많게는 2000km까지 달려야 한다. 이봉주가 그동안 대회를 위해 훈련한 거리만도 6만 여km에 달한다는 계산. 각종 대회에 출전해 풀코스를 뛴 거리는 1265km. 그런데도 아직 신체의 모든 부품이 말짱하니 세계 마라톤 관계자들로부터 ‘별종’ 소리를 들을 만도 하다.
사실 요즘엔 나이를 먹었다는 느낌이 든단다. “전에는 풀코스를 뛰어도 보름이면 회복됐는데 요즘은 한 20일 지나야 정상으로 돌아와요.”
하지만 그에게 아직 골인점은 멀다. “은퇴요? 아직 생각해보지도 않았어요. 아테네올림픽이 끝난 뒤 말할게요.”
● 뛰고 또 뛰고
‘봉달이’는 ‘달리는 기계’다. 하루 일과가 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대회가 끝난 뒤에도 쉬는 날이 없다. 코스 답사차 아테네에 갔을 때도 매일 새벽에 일어나 2시간을 뛰었다.
“달리지 않으면 허전해요. 감독님이 휴가 때 하루에 1시간만 뛰라고 해도 2시간 이상 달려요. 그래야 맘이 놓이더라고요.”
선수론 ‘환갑’을 넘긴 지금까지도 전성기에 못지않은 레이스를 펼칠 수 있는 이유다. 오인환 감독은 “봉주가 지금까지 잘 뛸 수 있는 것은 성실성 때문이다. 내가 주는 훈련 스케줄이 아무리 많아도 다 소화해낸다. 딴 짓 하는 것을 단 한번도 못 봤다. 앞으로도 몇 년은 거뜬할 것”이라며 혀를 내두른다.
오 감독 말대로 이봉주에겐 마라톤이 전부다. 오랜 만에 친한 친구들을 만나 기분을 낸다고 해야 맥주 한두 잔이 고작. 마라톤 외에 한 가지를 더 꼽는다면 ‘가정’이다. 생후 6개월이 돼 재롱이 부쩍 는 아들 우석이와 노는 게 큰 낙이라고. 우석이가 잠들면 책을 보면서 뒹구는 게 그의 휴식.
● 내년엔 수북한 머리
지난 5월 이식 수술한 머리가 제법 자랐다. “자꾸 빠지니까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그래서 심었어요. 머리가 조금씩 나니까 뛸 때도 자신감이 더 생겨요.”
머리 얘기를 꺼내니까 이봉주의 얼굴에 슬며시 웃음이 떠오른다. 맨들맨들하던 머리에 까실까실 머리카락이 솟아나니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스러워서일까.
이식한 머리가 제대로 자라려면 1년은 걸린다고 했다. 아테네 올림픽은 내년 8월. 그는 지금 내년 올림픽에서 수북한 머리를 흩날리며 1위로 골인하는 꿈을 그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비밀 아닌 비밀 한 가지. 그는 98년 쌍거풀 수술도 했다. 멋있게 보이기 위해서냐고? 그게 아니다. 땀이 눈으로 흘러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란다. 작년 머리카락을 심은 것도 같은 이유라고.
▼이봉주의 모든 것
△생년월일=1970년 10월11일
△신체조건=1m76, 56kg
△발 사이즈=왼발 248mm,
오른발 244mm
△최고기록=2시간7분20초(2000년 도쿄마라톤·한국 최고기록)
△혈액형=A형
△취미=독서
△마라톤 성적=95동아마라톤 1위, 96동아마라톤 2위, 96애틀랜타올 림픽 2위, 96후쿠오카마라톤 1위, 98로테르담마라톤 2위, 98방콕아 시아 경기대회 1위, 2000도쿄마라 톤 2 위, 2000후쿠오카마라톤 2위, 2001보스턴마라톤 1위, 2002부산 아시아경기대회 1위
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