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이라크전쟁이 시작돼 8일까지 20일 동안 숨지거나 실종된 기자는 모두 14명. 이틀에 1명 또는 2명이 숨지고 있다. 91년 걸프전 때는 단 1명의 사망자도 없었다.
미군의 인명피해와 비교해도 엄청난 숫자다. 20일 동안 미군의 인명피해는 전사 96명에 실종 10명. 30만명이 참전한 것에 비하면 3000명 중 1명의 비율이다.
반면 기자 수는 미군과 동행취재하는 600명과 독립적으로 이라크 내에서 취재하는 300명 등 900여명으로, 66명에 1명꼴로 피해를 보고 있다.
절반인 7명이 미군의 공격에 목숨을 잃거나 실종됐다. 미 국방부가 이번 전쟁에서 처음으로 ‘임베드(embed)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일부 기자들에게 미군과의 동행취재를 허용하고 임베드 기자 외에는 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는 원칙을 정한 것도 사망 속출의 원인이다. 미 국방부 대변인인 빅토리아 클라크는 8일 “전쟁 지역은 위험한 곳이고 우리는 언론기관에 그곳에 들어가지 말라고 경고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사전 경고는 취재방해 행위일 뿐 아니라 면책사유도 되지 않는다는 게 언론단체들의 주장.
제네바협약 부속의정서 79조에 따르면 미군은 전장에서 기자들을 민간인으로 간주, 해를 끼치지 않을 의무를 갖고 있다.
미군은 다양한 이유를 대고 있다. 외신 기자들이 묵고 있는 바그다드 팔레스타인 호텔에 대한 포격은 적의 공격에 대한 ‘자위적 조치’로, 아랍계 위성방송 알 자지라의 바그다드 지사에 대한 공격은 ‘오인 폭격’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알 자지라측이나 현지 기자들의 주장은 다르다. 미군은 알 자지라가 아니라 테러조직 알 카에다의 시설로 알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알 자지라 방송은 클라크 대변인에게 현지 사무실의 좌표를 알려주기 위해 2월에 보낸 편지 사본을 8일 공개했다.
알 자지라는 바스라 지사가 2일 미군으로부터 폭격을 당했고 알 자지라 방송임을 표시한 차량도 미군의 공격을 받았다. 2001년 11월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에는 카불에 있는 지사가 미군에 폭격을 당했다. 이 같은 연쇄적 ‘오인 공격’에 대해 알 자지라측은 “미군이 감시 받지 않고 바그다드를 파괴하기 위한 위협공격”이라고 비난했다.
팔레스타인 호텔에 대한 미군의 ‘자위적 조치’에 대해서도 현지 기자들은 한결같이 미군에 대한 위해가 전혀 없었다고 맞서고 있다. 설사 이라크측의 소규모 공격이 있었다고 해도 외신기자들이 모여 있는 시설을 포격한 것은 명백히 제네바협약 위반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국제언론단체, 기자보호 촉구▼
국제 언론단체들은 이라크 바그다드 중심부에 대한 미군의 폭격으로 8일 하루에만 3명의 기자가 숨지고 여러 명이 부상하는 등 기자들의 희생이 잇따르자 미국에 철저한 진상규명과 기자들에 대한 보호를 촉구했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8일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에게 “기자 3명의 목숨을 앗아간 미군의 공격이 바그다드에서 언론 취재를 못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는지 철저히 조사하라”고 촉구했다.
기자보호위원회(CPJ)는 럼즈펠드 장관에게 항의서한을 보내 “고의성이 없다고 해도 기자들을 보호하도록 규정한 제네바 협약을 위반한 것”이라면서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요구했다.
국제기자연맹(IFJ)은 “이날 공격이 기자들을 겨냥했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 “이는 중대하고 심각한 국제법 위반행위”라고 말했다. CPJ와 IFJ는 특히 미군이 이른바 ‘부대 배속(embedded) 기자’와 독자적으로 취재하는 기자들을 차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IFJ는 그러나 이라크 정부에 대해서도 기자를 비롯한 민간인들을 ‘인간방패’로 사용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아랍어 위성방송 알자지라 사무실에 대한 미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숨진 타리크 아유브 기자의 고향인 요르단에서는 500명의 요르단기자협회(JPA) 회원들이 모여 ‘언론역사 상 암흑의 날’로 선언하고 미국 영국 대사관에 항의문을 전달했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