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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에세이]김형규/'동남아 怪疾'의 정체

입력 | 2003-03-24 18:51:00


최근 동남아를 다녀온 사람 중 고열, 기침, 호흡곤란을 보이는 환자가 발생해 보건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아직 정체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아 ‘괴질’이라 불리는 이 병은 7일 전쯤 동남아, 특히 중국의 광둥성, 홍콩, 베트남의 하노이를 거쳐간 세계 각지의 사람들에게서 주로 나타났으므로 최근 이곳을 방문했거나 이곳을 다녀갔던 사람이 주위에 있다면 이런 증상이 있는지 잘 살펴봐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정확한 원인균이 밝혀져 있지 않고, 역학조사 중이므로 결과를 좀 더 기다려 봐야 할 것 같다.

최근 이 병의 최초 발생지인 홍콩의 한 병원에서는 이 병의 원인균이 아마도 ‘파라믹소 바이러스’인 것으로 추측된다는 발표가 있었다. ‘파라믹소 바이러스’란 홍역, 볼거리, 유사인플루엔자, 호흡기 합성체 바이러스 등과 같이 다양한 바이러스들을 포함하는 바이러스 가족을 일컫는 말이다. 이 중 홍역이나 볼거리는 증상이 특이하므로 ‘파라믹소 바이러스’ 중 유사인플루엔자나 호흡기 합성체 바이러스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우선 위의 모든 병들은 공기를 통해 쉽게 감염된다는 특징이 있다. 즉 환자와 이야기를 하거나 같이 식사를 하던 중에도 공기를 타고 전염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원인균과 관계없이 고열, 기침, 호흡곤란과 같은 증상이 있는 환자이거나 이런 증상이 있는 환자 중 최근 동남아를 다녀온 사람이 있다면 환자 스스로가 주위 사람을 위해 마스크를 하고 다녀야 한다. 대화하는 중에도 마스크를 벗지 말아야 하고 직장이나 학교, 가정에서도 가급적 식사를 따로 하는 것이 동료나 가족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공기를 타고 전염되는 바이러스라도 일단 공기 중에 노출되면 오래 살 수는 없지만 요즘처럼 괴질이 문제가 되는 시기에는 외출하고 돌아온 사람은 손을 씻고 양치질을 하는 것이 좋다. 호흡기 감염은 면역력이 약한 유아나 노인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으니 집안에 어린아이나 노인이 있다면 특히 이 점에 유의해야 한다.

‘파라믹소 바이러스’에 의한 호흡기 감염은 환자와 접촉하고 1주일쯤 뒤에 고열과 기침, 가래와 목이 심하게 아픈 증상이 나타난다. 바이러스들은 기관지 조직을 파괴하므로 기침할 때 가슴이 몹시 아프고 세균에 의한 2차 감염이 있는 경우 가래 색깔이 노랗게 되며 간혹 피가 섞일 수도 있다. 이 상태에서 병이 더 진행되면 호흡곤란을 일으키고 드물지만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바이러스는 기본이 되는 생명체 단위인 만큼 생존을 위한 적응력이 뛰어나 끊임없이 변종이 나타난다. 인류가 페니실린을 발견한 이후 세균을 줄일 수 있는 항생제는 속속 개발되는 데 비해 바이러스 치료제의 개발 속도가 더딘 것은, 세균이 항생제에 내성을 갖는 기간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바이러스의 변종이 빠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현재 개발되어 있는 항바이러스약은 발병 초기에 투여해야만 효과가 있으나 투약을 위해서는 입원을 해야 하고 약값이 비싸다는 문제점 이외에, 조기진단법이 없다는 더 큰 문제점이 있다. 검사에 의한 진단 없이 증상만으로는 다른 바이러스나 세균에 의한 급성 호흡기증후군과 구별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약이 있다 해도 발병 초기에 항바이러스약을 투여하기는 어렵다. 보건당국이 긴장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김형규 고려대 의대교수·내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