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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 주류가 바뀐다]미술

입력 | 2003-02-10 18:18:00

더 이상 금기는 없다. 신체와 성에 대한 자유로운 표현은 최근 미술계의 변화된 세태를 반영한다. 김아타씨의 작품 ‘뮤지엄 프로젝트 #019-필드시리즈’. -동아일보 자료사진


‘더 이상 주류와 금기(禁忌)는 없다.’

미술계도 정치권과 마찬가지로 급격한 세대교체 속에 주류가 이동하고 있다. 화단에 감히 얼굴을 내밀지 못하던 30∼40대 젊은 작가군(群)이 대거 형성되고 있고 미술 정책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서울대와 홍익대를 축으로 한 견고한 학맥구도도 무너지고 회화만이 장르를 독점하던 시대도 지났다. 바야흐로 세대, 장르, 표현 방식의 백가쟁명(百家爭鳴)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무너지는 양강구도 ▼

학연, 지연은 문화계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도제식 훈육방식이 지배적인 미술계에서는 특히 심했다. 40여년 이상 서울대와 홍익대 두 학맥이 미술계를 좌지우지해 온 것이 사실. 지난해 12월 하종현 전 홍익대 학장이 서울시립미술관장으로 낙점됐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가 과거 홍익대 인맥의 좌장격이었다는 점을 들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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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제 두 학교만이 아닌 이른바 비주류 학교가 두각을 보이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곳이 경원대 한성대 한국예술종합학교 등. 경원대 미대는 90년대 초 참여미술 진영에서 영화광고와 다큐물 작업을 선보인 김태헌을 비롯해 함진, 배종헌, 조습, 김기라, 정인엽 등이 등장하면서 청년 현대 미술의 산실로 급부상했다. 한성대는 글자를 이용한 독특한 풍경작업으로 석남 미술상을 수상한 유승호와 권정준이,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는 김연용, 장지아 등 영상 설치 작가들이 독창적인 활동을 펴고 있다. 한편 성신여대는 판화분야가 독보적인데 서울대 홍익대에서 학부를 마친 사람들이 판화공부를 위해 이곳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경우도 있다.

▼부상하는 30,40대 ▼

원로들이 대다수였던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미술계는 ‘30대 작가’라는 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30대와 40대 초반의 작가군이 한국 현대 미술계에서 주도적인 세(勢)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유학파로 국내외를 넘나들면서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또 대부분 장르면에서 설치 미술을 택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상을 받으면서 국제적으로 주목받은 이불(39)을 비롯, 설치작가 김영진(42), 최정화(41), 김범(40), 이용백(37), 정연두(34) 등이 주목받고 있다. 한국화 작가로는 유근택(38)이 있다. 이 밖에 김소라, 김홍석, 노상균, 도윤희, 마이클 주, 박이소, 박유화, 서도호, 신경희, 엄정순, 정서영, 홍승혜 (가나다순)등도 주목받는 젊은 작가들.



▼장르의 해체 ▼

미술=회화라는 등식은 일찌감치 무너져 이제 장르 구분까지 바꿔 놓았다. 동양화냐 서양화냐 하는 구분이 아니라 평면, 설치, 영상, 케미컬아트, 조각 등으로 세분화하고 있는 것. 최근 들어 가장 두드러지게 부상한 장르는 건축과 사진이다.

값 싸고 넓은 집만 요구하던 건축주들도 이제는 예술적인 공간으로서의 건축을 요구하고 있다. 파주 출판도시나 해이리 아트밸리 같은 것은 도시의 전체적 조화와 친환경적 건축을 우선시하는 프로젝트로 국내외 내로라 하는 건축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북촌마을 지킴이 ‘한옥을 사랑하는 모임’이나, 해인사를 비롯한 건축환경 조성을 지원하는 ‘아름지기’, 도시공간의 공공성을 추구하는 ‘문화연대’ 등의 역할도 눈에 띈다.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 확대로 인한 사진의 부상으로 고급갤러리나 미술관들도 잇따라 사진전을 열고 있고 대중의 관심도 높다. 지난해 잇따랐던 사진전 열풍에 이어 올해 국립현대미술관은 현대사진의 대부인 ‘만 레이 회고전’(11월)을 연다.

▼금기는 없다 ▼

전반적인 인터넷 미디어의 확산은 미술계도 마찬가지. 제도나 정책의 개혁을 바라는 젊은 그룹들은 네오룩 닷컴이나 포럼A를 통해 다양한 이슈를 만들어 내고 있다. ‘왜 내 작품은 리뷰하지 않는가’ 등 작가들의 도발적인 발언에서부터 공공 미술관의 제도개혁까지 온갖 제언들이 쏟아지고 있다. 막강한 대중적 명성으로 문화 권력이라는 말까지 듣고 있는 유홍준씨의 ‘완당평전’에 대해 은행원 고서연구가 박철상씨가 비판을 가한 것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표현의 금기가 사라진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 제도권에선 여전히 우유 홍보를 위해 알몸 퍼포먼스를 벌인 기획자를 불구속하기도 하지만, 신체와 성에 대한 과감한 표현은 이미 대세(大勢). 지난해 로댕갤러리의 ‘신체풍경전’. 일민미술관의 아라키 노부요시 사진전, 갤러리 사비나의 누드전 등이 그것이다.

▼비주류 전시공간들의 부상 ▼

외환위기 이후 자생적으로 생겨난 대안 화랑들은 기존 상업화랑이나 제도권 미술관에 의한 주류 미술과 다른 시각을 추구하면서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는 독립 공간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들은 80년대 민중 미술의 담론을 일상의 문제, 마이너리티 문제 등으로 끌어내려 작품의 형식, 전시장소의 특성에 구애받지 않고 있다. 프로젝트 사루비아 다방, 갤러리 루프, 대안공간 풀 등이 꼽힌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