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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일과 꿈]황경신/문화의 주체되어 움직이자

입력 | 2003-01-29 19:03:00


그 공연의 티켓은 일찌감치 매진되었고 객석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오래 전부터 동경해왔던 뮤지션들이 무대에 올랐기 때문에 나는 굉장히 들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무대는 점점 뜨거워졌다. 하지만 객석은 뭔가 기묘한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상상했던 라이브가 아니었다. 중고교 시절에 줄곧 꿈꾸어왔던, 간혹 외국 잡지에서 사진으로만 볼 수 있었던 뜨거운 라이브가 아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채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다. 라이브가 끝날 때쯤, 가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노래를 부르며 여러분도 함께 부르자고 여러 번 재촉했다. 하지만 끝내 누구도 노래를 따라 부르지 않았다. 힐끗힐끗 서로의 눈치를 보며, 무대가 끝날 때까지 각자의 자리에 못 박혀 있었다. 1980년대 중반의 일이다.

▼‘눈총’ 받아온 창의력-상상력▼

나와 내 친구들은 종종 음악을 듣기 위해 서울 신촌의 한 카페를 찾았다. 이곳에서는 언제나 록음악을 틀었다. 한번은 음악을 듣다가 흥이 오른 누군가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곧이어 두세 명이 더 일어났고, 앉아 있던 다른 사람들도 신이 나서 박수를 쳐댔다. 그런데 노래 한 곡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단속반’이 들이닥쳤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카페에서 춤을 추었다’는 이유로 그 카페의 주인은 어마어마한 벌금을 물어야 했다. 1990년대 중반의 일이다.

평생 가도 볼 기회가 없을 것 같던 외국의 뮤지션들이 줄줄이 우리나라에서 공연을 가졌다. 당연히 부지런을 떨며 그들을 보러 다녔다. 나는 언제나 공연을 100% 즐기고 싶었고, 당연히 자리에서 일어나 헤드뱅잉(머리를 흔드는 것)을 하거나 손을 흔들며 춤도 추었다. 하지만 번번이 제지를 당해야 했다. 번쩍이는 막대를 들고 뛰어오는 진행요원들에 의해, 안 보이니까 빨리 앉으라고 소리치는 뒷사람들에 의해. 불과 1, 2년 전의 일이다.

‘관객들이 모두 참여하는 공연’이라는, ‘연극과 콘서트와 게임과 서커스를 합쳐놓은 것 같다’는 공연도 보러간 적이 있다. 과연, 배우들과 함께 이리저리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고함을 지르고 뛰고 몸을 흔들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공연이었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미쳐보기 위해 공연장을 찾은 사람들의 틈에 끼어, 나 역시 발을 구르고 몸을 흔들었지만, 그 뒷맛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 즐거움에는 ‘창의력’이 없었다. ‘상상력’이 없었다. 나의 ‘의지’가 개입될 틈이 없었던 것이다. 이 공연은 많은 이들의 갈채를 받으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페이퍼(PAPER)’라는 문화잡지를 만들게 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아무도 그런 책을 만들지 않아서” 라는 것이 우리의 대답이다. 다른 말로는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제공되는 문화가 재미없어서, 뭔가 재미있는 짓을 저질러보고 싶어서”다. “‘문화의 소비자’에서 ‘문화의 주체’가 되고 싶었다”라고 어렵게 말할 수도 있다. 1995년에 창간된 ‘페이퍼’는 이제 많은 이들과 친구가 되었다. 매달 새로운 소재를 색다른 시각으로 변주하며 즐거운 세계를 창조하고, 간혹 독자들과 함께하는 행사를 통해 상상력을 확대한다. 페이퍼가 주최하는 행사에서는 모든 이들이 주인공이다. “같이 노래하고 춤추고 고함 지르지 않으면 자기만 손해지” 하고 나는 종종 말한다.

▼더 재미있는 세상을 위해▼

몸이 굳어 있으면 그 속에 들어 있는 마음도 굳어버린다. 그럼 몸만 움직여주면 마음이 자유로워지는가? 수백명이 일사불란하게 똑같이 움직여야 했던 매스게임의 시대는 지나갔다. 그런 시대에서는 내 마음이 하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설사 그걸 안다고 해도 ‘마음대로’ 하는 방법을 몰랐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틀에 끼워 맞춰 살면서 이것은 나의 인생이 아니라고 불평하지 말고, 창의력과 상상력을 동원해 ‘마음대로’ 움직여 보자. 우리가 생명을 얻어 살고 있는 것은 이 세상을 지금보다 훨씬 더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닌가?

황경신 월간 '페이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