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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시즌]비운의 투수 이선희 ‘21년 恨’ 씻은 눈물

입력 | 2002-11-11 17:48:00


마해영의 끝내기 홈런으로 삼성이 창단 21년 만에 첫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안은 10일 저녁. 헹가래를 치며 기뻐하고 있는 선수단과는 달리 대구구장 2층의 삼성 관계자실에서 남몰래 눈시울을 적신 사람이 있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빼놓지 않고 생각나는 사람. 그를 두고 어떤 이는 ‘비운의 투수’라고 했고 어떤 이는 한국시리즈에서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삼성 징크스의 진원지라고도 했다.

삼성 2군 투수코치 이선희(47·사진). 그는 지난 20년 동안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그러기에 유니폼 아닌 사복 차림으로 삼성의 한국시리즈 첫 우승을 지켜본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으리라. 11일 경산구장에서 만난 그는 흰 머리가 부쩍 는 모습이었다.

“우승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고 무척 애를 썼죠. 그런데 그게 잘 안 되더라구요. 무려 21년입니다. 세월의 무게가 한꺼번에 밀려오더군요.”

국내에 프로야구가 출범한 82년만 해도 왼손투수 이선희의 명성은 하늘을 찌를 듯 했었다. 75년 서울아시아선수권대회를 시작으로 77년 니카라과 대륙간컵대회, 80년 도쿄세계선수권대회까지 한국은 그가 있었기에 숙적 일본을 상대로 연승가도를 달릴 수 있었다.

특히 77년 대륙간컵대회에선 MVP와 다승, 구원왕을 석권한 그의 활약 덕분에국가대표 초보 사령탑이었던 삼성 김응룡감독이 첫 우승의 감격을 맛볼 수 있었다. 그해 국내야구선수로는 전무후무하게 대한민국 체육상까지 탔던 이선희야말로 당대 최고의 투수였다.

프로에 입단할 때도 이선희는 미국서 돌아온 OB 박철순을 빼곤 당시 최고 대우인 계약금 1500만원에 연봉 1800만원을 받았다.

하지만 호사다마였던가. 이선희는 82년 2월 삼성의 창단식 전날 부친이 뇌종양으로 작고했고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하얀 카네이션을 가슴에 단 채 창단식에 참가하는 아픔을 겪었다.

불운의 예고탄이었을까. 한달 후인 3월27일 이선희는 역사적인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10회말 MBC 이종도에게 연장 끝내기 만루홈런의 진기록을 헌납했고 그해 한국시리즈에선 마지막 6차전에서 9회초 OB 김유동에게 또다시 만루홈런을 내주며 그늘 속으로 숨어버렸다. 바로 그해 이선희는 정규시즌에서 15승7패 1세이브에 평균자책 2.91의 초특급 성적을 거뒀지만 이를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불운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는 결국 85년 MBC 이해창과 맞트레이드돼 고향 대구를 떠났다.

“다들 안쓰럽다고 해요. 하지만 투수가 홈런 한두방 맞는 것은 병가지상사죠. 다만 저의 경우는 너무나 극적인 홈런을 연거푸 맞은 게 문제였습니다. 그래도 제가 있었기에 국내 프로야구의 발전이 한 10년쯤은 앞당겨졌을 겁니다.”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삼성에 첫 우승을 안긴 9회말 이승엽 마해영의 홈런 두 방으로 그는 비로소 20년 넘도록 그를 얽매어온 멍에를 벗었다. 비운의 투수란 꼬리표도, 징크스의 진원지란 비아냥도 멀리멀리 날려보냈다. 이제 그는 환하게 웃을 수 있다.

경산〓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