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임레 케르테스(72)는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생환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적 폭압과 개인의 생존’을 탐구해온 작가. 국내에는 아직 그의 작품이 번역 소개되지 않았다.
스웨덴 한림원은 “아우슈비츠의 체험을 통해 근대에 인류가 겪어야 했던 인간의 타락에 대한 궁극적인 진실을 보여준다”고 그의 수상 이유를 설명했다. 케르테스 자신도 “소설을 쓸 때는 언제나 아우슈비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야만적 상황에 처한 인간의 생존이 작품의 궁극적인 테마임을 밝혀왔다. 헝가리에서는 한국처럼 성(姓)을 앞에 두는 전통에 따라 ‘케르테스 임레’라고 불린다.
그가 아우슈비츠에 수용된 시기는 1944년. 열다섯살,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때였다. 곧 전쟁이 종결된 덕택에 목숨을 구했다.
하지만 패망 직전 대량살상의 범죄 현장에서 경험한 고통은 작가로서 그의 인간인식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1948년 그는 부다페스트의 신문사에 취직하지만 이 신문사가 공산주의 이념을 표방하면서 3년 만에 해직됐다.
이후 2년간의 군복무를 마친 그는 소설 창작을 모색하면서 니체 호프만슈탈 슈니츨러 프로이트 등 독일과 오스트리아 문필가들의 작품을 번역한다.
이 작업은 그의 작품세계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림원은 수상이유에서 ‘그의 문체는 산사나무 울타리처럼 조밀하며 가시가 돋쳐 준비되지 않은 독자에게 낯섦을 안겨준다’고 밝혔다. 이는 케르테스의 문체가 독일 산문전통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나타낸다.
초기작을 비롯한 대부분 작품은 수용소생활의 체험을 다루고 있다. 대표작 ‘무운(Sorstalansag·1975)’은 집단수용소에서 살아남기 위해 굴종의 자세를 취하는 주인공을 다룬 작품. 이 소설에서 그는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처럼 캠프의 현실을 평범한 보통사람의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묘사해 브레히트풍의 ‘낯섦’을 안겨주었다.
이 소설에 ‘도덕적 분개’ ‘상징적 저항’의 자세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독자들은 잔학행위의 참혹함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게 된다. 수용소에서의 처형마저도 집중적이고 치밀한 악행이라기보다 ‘생각 없음’의 결과라는 사실에 맞닥뜨리기 때문. 이 작품을 통해 그는 ‘산다는 것은 순응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포로들의 인내력은 초인적 의지가 아니라 인간의 ‘공존능력’이 낳은 일상적 결과일 뿐이라는 것.
발표 당시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이 작품은 1985년 개정판 발간과 함께 독일어 등 서유럽어로 번역되면서 일약 문제작으로 떠올랐다. 이어 ‘대실패’(1988)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1990)가 발표되면서 ‘무운 3부작’이 완성됐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에서도 그는 수용소 생활을 마치 집에 있는 듯한 편안한 느낌으로 그린다. 여기서 순응의 가장 높은 단계는 사랑이며, 사랑이야말로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도 살아남고자’ 하는 욕망에 대한 항복으로 묘사된다.
소설 이외의 장르에서도 그는 반인륜적 집단학살인 홀로코스트와 인간존재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뤘다. 1993년 출간된 에세이 ‘문화로서의 홀로코스트’에서 그는 ‘지성적이고 도덕적인 대륙으로 인식돼온 유럽에서 어떻게 대학살이 가능했는가’를 문화심리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경민 한국외대 헝가리어과 교수는 “케르테스는 나치즘과 공산주의라는 이중의 억압을 온몸으로 싸운 양심적 지식인으로 높이 평가된다. 특히 홀로코스트가 생겨난 심층의식적 문화적 구조를 파헤쳐온 작가로 이름높다. 그는 헝가리 내의 유대인 모임을 통해 끊임없이 전통문화를 탐구하는 열정도 기울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편 헝가리인으로서의 첫 노벨문학상 수상소식에 그의 조국은 환호작약하고 있다. 헝가리 작가연맹 의장인 마톤 칼라스는 “그는 훌륭한 작가이다. 게다가 헝가리인이란 사실에 우리는 너무도 행복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헝가리 출판연맹 의장 라슬로 젠타이는 “우리는 두 세기 동안이나 이 같은 일을 기다려왔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해부터 베를린 고등연구원의 펠로(fellow)로 와있는 그는 요즘 새 소설 ‘청산(Liquidation)’을 집필 중이다. 그는 이 작품에 대해 ‘홀로코스트 2세대의 상황을 묘사함으로써 홀로코스트에 대해 최후의 시선을 던지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암레 케르테스 연보◀
1929 부다페스트의 유대인 가정에서 출생
1944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수감
1945 부헨발트 강제수용소로 옮긴 상태에
서 종전으로 석방
1948 부다페스트의 일간지 ‘빌라고사크(開
明)’에서 기자생활 시작
1951 기자에서 해직된 뒤 작가와 독일어번
역 문학가로 활동
1975 대표작 ‘무운(Sorstalansag)’ 출간
1977 ‘길을 발견한 사람’ 출간
1985 ‘무운’ 개정판 출간
1988 ‘대실패’ 출간
1990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출간
1992 ‘미술관 일기’ 출간
1993 에세이 ‘문화로서의 홀로코스트’ 출간
1995 브란덴부르크 문학상 수상
1997 ‘타인으로서의 나’ 출간
라이프치히 서적상 수상
2001 ‘망명한 언어’ 출간
역대 노벨문학상
연도
수상자
국적
대표작
2001
V S 나이폴
영국
중간의 길
2000
가오싱젠
프랑스
영혼의 산
1999
귄터 그라스
독일
양철북
1998
사라마구
포르투갈
발타자르와 블리문다
1997
다리오 포
이탈리아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우연한 죽음
1996
심보르스카
폴란드
큰 수
1995
셰이스 히니
아일랜드
어느 자연주의자의
죽음
1994
오에겐자부로
일본
사육
1993
토니 모리슨
미국
솔로몬의 노래
1992
데릭 월컷
세인트루시아
오메로스
1991
고디머
남아공
사탄의 달콤한 목소리
1990
옥타비오 파스
멕시코
태양의 돌
1989
호세 셀라
스페인
파스쿠알 두아르테의
가족
1988
나기브 마푸즈
이집트
앗 술라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