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시론]원제무/신도시 또 '뚝딱 개발'…

입력 | 2002-09-05 18:41:00


경기 수원 영통신도시 주민들은 ‘영통-수지-죽전-운암 지구’ 등 미니 신도시가 난립하면서 서울까지의 출근시간이 30분이 더 걸린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8개의 미니 신도시가 들어간 남양주에서 서울 강남쪽으로 연결되는 버스 노선은 단지 2개뿐이다. 이곳 주민들은 서울 다니기가 너무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짧은 기간 내에 서울 주변이 모두 베드타운으로 바뀌고 나서 겪는 후유증들이다. 불도저의 힘은 무섭다. 수도권 곳곳이 파헤쳐지고, 회색 콘크리트의 건물군으로 변해간다. 필자도 요샌 ‘거기에 정말 숲과 동산이 있었을까’ 하고 두 눈을 비벼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묻지마 개발’은 아름다운 산천을 사라지게 하고, 흉측한 풍경과 회색의 스카이라인만 만들어 놓았다. 문제는 지금도 ‘묻지마 개발’이 수도권 전체에 무섭게 번져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도권 과밀 억제´말뿐▼

서울 강남의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솟아오르자 정부가 신도시 2, 3곳 추가 개발이라는 카드를 내놓았다. 따지고 보면 아파트값의 급등은 정부가 자초한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경기가 침체되자 건설사들에 각종 세금을 깎아주고, 분양가는 자율화시키며, 분양권 전매까지 허용하고 나섰다. 그 당시로는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었는지 몰라도 이러한 건설경기 부양책이 아파트값의 상승으로 이어졌다. 이에 강남의 높은 교육열이 겹쳐져 아파트값을 더욱 부채질한 꼴이 되었다.

정부의 부동산대책이 비틀거린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수도권에 대한 비전이 불분명한 것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할 때마다 ‘신도시 건설론’이 전면에 부각된다. 부동산투기를 잡기 위해 신도시를 건설하겠다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일 것이다.

신도시 2, 3곳 추가건설은 ‘수도권정비’ 정책의 포기를 의미한다. 전 인구의 반이 모여 살고 있는 수도권은 난개발에 따른 인구 증가로 ‘수도권 집중 억제’라는 굴레는 이미 물 건너 간 것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수도권정비법으로 억제하려 해도 수도권의 아파트와 인구는 계속 늘어만 갈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바와 같이 몇 개의 신도시가 들어서게 되면 이젠 ‘수도권 과밀억제’라는 허울좋은 구호는 그나마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기회에 유명무실한 수도권억제 정책을 포기하고 ‘현실적이고 확고한’ 수도권 정책 방향을 잡아나가야 한다.분당, 일산 등

수도권 5개 신도시를 건설하면서 수많은 신도시건설 후유증에 시달려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들 신도시는 자족기능이 부족해 서울에 부담만 줬고, 교육 문화 관공서 등의 공공시설이 부족해 주민들이 온갖 어려움을 겪었으며, 도로 및 철도 등의 인프라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아 교통혼잡과 불편을 가중시켜왔다. 이번에 발표된 신도시 2, 3곳 추가개발은 과거 5개 신도시 관련 문제점들이 다시는 재발되지 않는 차원에서 건설되어야 하는데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이번에 발표된 신도시 예정지 2, 3곳은 모두 서울에서 반경 20∼30㎞ 이내에 입지하고 있는 후보지들이다. 서울 통근거리 내에 있는 입지들이다. 그러므로 이들 신도시가 자족기능을 지니기보다는 서울 의존적인 신도시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서울로 출퇴근하는 유발 교통량으로 인해 수도권 전체 도로망에 체증을 심화시킬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악순환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긴 안목으로 여론수렴을▼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해 신도시를 건설한다는 것은 정책의 본말이 뒤바뀐 것이고, 정책의 혼선과 모순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신도시 건설은 수도권 과밀방지라는 현행 정책과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목표와도 상충된다. 신도시 개발은 해당권역내의 종합적인 계획과 철학 속에서 필요성이 인식돼 논의되어야 하며 중앙정부 차원의 졸속적 결정으로 계획되어서는 안 된다.

그동안 수도권에서는 대규모 신도시 개발을 억제한 결과 포도송이 같은 주택단지가 간선도로에 더덕더덕 붙게 되는 난개발이 이루어져 왔다. 이런 난개발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커다란 신도시의 건설은 필요하다. 하지만 신도시는 선진국에서처럼 10∼15년에 걸쳐 차근히 여론수렴, 구상, 계획, 설계 등의 단계를 거쳐 건설돼야 한다. 과거 5개 신도시와 미니 신도시 개발의 쓰라린 경험을 재발시키지 않도록 충분한 시간을 갖고 여론수렴 과정을 거쳐 신중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원제무 한양대 도시대학원 교수·교통학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