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30일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역사적인 북-일 정상회담 계획을 발표한 데 대해 “한반도 주변 4강국의 실질적인 남북 교차승인이 가시화됐다”며 일제히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러-中 입김이 北행보 영향 준듯▼
▽케네스 퀴노네스 미국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 이사〓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북한을 방문키로 한 것은 남북관계에도 매우 긍정적인 움직임이다.
이번 조치는 북한이 외교를 중시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최근 북한에 이 같은 행보를 취하도록 주문해 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고이즈미 총리가 뭔가 성과를 거둘 수 있게 신경을 써야 하므로 상징적인 수준 이상의 회동이 되겠지만 당장 큰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고이즈미 총리는 최근 국내 입지가 약화됐기 때문에 신중히 처신할 것으로 보인다.
양국 관계가 진전을 이루기 위해선 북한이 납북 의혹이 일고 있는 실종 일본인 문제 등에 성의를 보여야 한다.
이번 정상회담은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에도 압력으로 작용, 미국의 대북접근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北, 美의 강한 압력 회피 의도▼
▽이즈미 하지메(伊豆見元) 시즈오카(靜岡)현립대 교수(국제관계학)〓북한이 북-일 정상회담에 응한 것은 미국의 강한 압력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단기적으로는 파산한 총련계 신용조합 문제도 염두에 둔 것이다.
일본측도 일본인 납치의혹 해결을 서두르고 있다. 납치 문제는 북-일교섭의 전제조건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교섭이 진전되지 않는다는 것을 북한도 잘 알고 있다.
이라크 문제가 어떻게 되느냐에 달렸지만 미국이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지면 북한을 둘러싼 상황은 상당히 힘들어진다. 그렇게 되기 전에 일본으로서도 북한과의 현안을 추진하려 할 것이다. 정상회담이 실현되고 북-일교섭에서 납치문제가 진전되면 다음은 안전보장 문제가 중요 의제로 떠오를 것이다.
▼日, 北 사실상 외교적으로 승인▼
▽제성호(諸成鎬) 중앙대 법학과 교수〓원래 국가 수반의 정상회담은 수교가 완료된 뒤 외교적 절차에 따라 이뤄지지만 이번 북-일 정상회담은 ‘선(先) 정상회담, 후(後) 수교협상’이라는 절차를 밟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양국 정상회담은 일본이 북한을 사실상 외교적으로 승인하는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은 남북과의 삼각관계에 있어 한반도의 이해당사자로 부상했으며 일본을 잡기 위한 치열한 외교전이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
또 북-일간 수교협상이 급물살을 탈 것이며 북한의 경제개혁조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4강관계 美-日-러 대 中 구도로▼
▽동용승(童龍昇) 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장〓북-일 정상회담 소식은 한반도 주변 4강의 역학관계가 변하고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러시아는 올 들어 북한과 정상회담을 갖고, 일본에는 6자 회담을 제의하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반면 중국은 이상하리 만치 조용했다.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는 가운데, 일본 및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노력해온 러시아는 미국쪽으로 접근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미국은 ‘악의 축’ 발언으로 대북 강경정책을 밀어붙였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의지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미국의 묵인이 없었다면 일본이 북-일 정상회담을 추진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北-日 실질 관계진전 두고 봐야▼
▽김성한(金聖翰) 외교안보연구원 교수〓고이즈미 총리가 미국과 충분한 사전 조율을 거쳐 방북을 결정한 것인지, 아니면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대북 대화 재개 기조와 배치하는 결정은 아닌 듯하다.
문제는 북한이 대미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고 일본이나 한국을 이용하려는 것이냐, 아니면 실질적인 북-일관계 진전을 이루려는 의사가 있느냐가 중요하다.
어느 쪽이냐에 따라 이번 정상회담의 결과가 긍정과 부정으로 갈릴 것이다.
북-일 정상회담이 미국의 대북 최우선 과제인 핵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문제 해결을 위해 의미있는 진전을 이룬다면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北, 불량국가 이미지 탈피 계기▼
▽조명철(趙明哲)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북한과 일본 관계는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사안만 남았다. 양측은 관계개선을 하지 않으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무대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는 것을 서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경제실리 획득에 국가역량을 집중시키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정치적인 양보를 감수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남북한 및 북-일관계가 개선되면 북한의 ‘불량국가’ 이미지가 희석되고, 미국의 대북 군사적 압박은 더 이상 명분을 얻기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