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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주인공은 마네일까 세잔일까 ´작품´

입력 | 2002-08-30 17:48:00

‘낙선전’ 에 출품돼 조소와 야유의 대상이 된 마네의 ‘풀밭 위에서의 점심’(1863). 졸라의 장편 ‘작품’에 등장하는 유화 ‘야외’의 모델이 됐다.


◇작품/에밀 졸라 지음 권유현 옮김/616쪽 2만원 일빛

1863년, 파리에서는 미술사상 최대의 스캔들이 일어났다. ‘낙선전람회’에 출품된 에두아르 마네 작 ‘풀밭 위에서의 식사’가 요란한 비난과 조소의 굉음을 일으킨 것.

상류 시민들은 옷을 벗은 여인이 갑자기 일상의 소풍 광경에 ‘뻔뻔스레’ 끼어든 데 야유를 보냈다. 평론가들은 밝은 피부색과 검은 옷의 극단적인 대비에 불쾌함을 표현했다.

그러나 같은 해 나폴레옹 3세가 미술대전 ‘살롱’의 낙선자들에 ‘낙선전’을 허용한 데서 보듯 새로운 시대의 신호탄은 이미 쏘아져 있었다. 제정 치하의 시민사회는 갖가지 모순으로 부글거리고 있었지만, 기존 미의식에 저항하는 반란자들은 인상주의의 찬연한 시대를 꽃피워 냈다.

문인 중에도 이 광휘의 시대를 목도한 증인이 있었다. ‘목로주점’ ‘제르미날’의 작가 에밀 졸라(1840∼1902). 마네, 폴 세잔 등과 가까이 지낸 그는 ‘낙선전 파동’ 23년 뒤인 1886년 장편 ‘작품(L’oeuvre)’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20권 짜리 대하 소설연작 ‘루공 마카르 총서’에서 유일하게 시도한 ‘미술가 소설’. 소설로서는 이례적으로 인상파 운동을 분석하는 미술 관련서나 미학 이론서에 자주 언급되고 인용되는 책이지만 국내에선 제대로 소개될 기회가 없었다.

주인공은 화가 클로드. 폭우가 내리던 날 파리에 도착한 처녀 크리스틴에게 쉴 자리를 제공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랑이 싹튼다. 크리스틴을 모델로 대작 ‘야외’를 그려 살롱에 출품하지만 낙선하고, 처음 열린 ‘낙선전’에 출품한 결과 빗발치는 야유며 조롱에 휩싸인다.

두 사람은 시골로 도피해 꿈같은 나날을 보내지만, 그림에의 열정을 억누를 수 없던 클로드는 파리로 돌아온다. 필생의 대작에 몰입할수록 이상과 현실의 거리는 커져가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이 닥치는데….

미술가를 등장시켰다는 점만으로 이 작품이 ‘미술 소설’인 것은 아니다. ‘오른쪽의 빛나는 선과 왼쪽의 어두운 선 사이에서 세느강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으며, 그 빛나는 강 위로 다리의 얇은 선들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시간대를 바꿔가며 등장하는 파리 풍경의 묘사를 통해 졸라는 ‘인상파적 글쓰기’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주인공 클로드의 모델은 마네였을까? 졸라는 “극적으로 각색된 마네 또는 세잔, 오히려 세잔에 가까운 인물”이라는 인물 스케치를 남기고 있다. 작품 속에 나타나는 클로드와 문필가 상도즈의 청소년기는 실제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세잔과 졸라의 관계를 연상하게 한다.

이 작품이 발표된 뒤, 세잔은 졸라와 절교한다. 자신을 모델로 한 주인공이 파멸을 맞고 만다는 설정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일까.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