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21명 해상탈출 주도한 순종식씨]당간부 며느리 몰래 탈북 추진

입력 | 2002-08-19 18:37:00

19일 새벽 인천 해양경찰서 부두에 도착한 집단 탈북가족 중 어린이들이 다소 상기된 가운데 호기심에 찬 표정으로 취재진을 바라보고 있다. - 박경모기자


‘38시간의 목숨을 건 해상 탈출.’

그것은 자유세계에 대한 염원과 고향에 대한 귀소본능이 만들어낸 한편의 인간승리였다.

이번 집단 해상탈출은 20t짜리 목선의 선장인 순용범씨(46)의 아버지 종식씨(70)의 결심과 의지가 밑바탕이 된 것으로 밝혀졌다.

48시간여의 기나긴 항해 끝에 인천 해경부두에 도착한 19일 오전 4시경 종식씨는 누구보다 앞서 감격의 첫 마디를 했다.

“남한에서는 자기가 일한 만큼 배불리 먹고 살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죽더라도 선산에 묻히고 싶었어요.”

순씨는 한국전쟁 당시 고향인 충남 논산시 부적면에서 의용군으로 끌려갔다. 북한군이 퇴각을 하면서 순씨도 강제로 월북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살던 곳은 평북 신의주시 남하동 15반. 인민군에서 제대한 후 그는 줄곧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북한에서 부인 김미연씨와 결혼해 4남1녀의 자녀들을 낳아 키우고 그들이 또 결혼해 손자들이 태어났다.

고향에는 부모와 8남매 형제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남북 이산가족들의 만남이 이뤄질 때마다 그 누구보다 마음이 설레었다.

TV와 라디오를 통해 남한 방송을 청취하던 그가 마침내 탈북을 결심한 것은 2년 전. 북한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그에게 고향 논산에서 동생들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다. 바로 큰아들 용범씨(46)에게 탈북계획을 털어놓았다. 아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아버지의 뜻에 적극 찬성했다. 이때부터 은밀한 탈북 계획이 진행됐다.

그러나 가족 중 당 간부 가족 출신인 둘째와 셋째 며느리에게는 탈북작전을 극비에 부쳤다.


홍건도의 어업지도국(우리의 어촌계에 해당) 소속인 용범씨는 다행히 올 6월 최신 항해장비 등이 딸린 어선인 ‘대두 8003호’의 선장을 맡게 됐다.

이 배는 중국측 불법어로선으로 벌금을 내지 않아 북한 당국에 압류된 선박.

탈출 ‘D데이’를 17일로 잡은 선장 순씨는 출발 2주 전에 자신의 어릴 적부터 친구인 방회복씨(45) 가족 3명과 이 배 기관장 이경성씨(33)도 귀순길에 동참시켰다.

17일 새벽 신의주에서 가까운 선천군 홍건도의 포구에 가족들이 모두 모였다. 이곳에 용범씨의 배가 정박해 있기 때문이었다. 집단으로 움직이면 발각될 것을 두려워한 일부 가족은 아예 전날 밤에 도착해 배에서 기다리기도 했다. 드디어 새벽 4시경 안개가 자욱한 포구를 배는 천천히 빠져나갔다. 오직 적막과 파도소리만이 그들을 전송하는 듯했다.

식량과 경유 등을 실은 ‘대두 8003호’는 홍건도 포구에서 서쪽 270도 방향으로 발진했다. 10시간여의 운항 끝에 이 어선은 이미 북한 영해를 벗어나 중국 산둥반도와 가까운 공해에 다달았다. 갑자기 눈앞에 중국의 대형 어선단이 나타났다.

“너무 중국 쪽으로 들어온 것 아니냐. 중국 경비정에 잡히면 끝이다.”

최대 속력 시속 10노트인 이 배는 뱃머리를 급히 90도 남쪽으로 꺾어 줄행랑을 쳤다. 그러나 속력을 너무 높이는 바람에 망망대해에서 기관고장을 일으켜 배가 정지했다. 위기의 순간이었다. 기관사 이씨가 나섰다. 모두들 기도하는 심정으로 그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하느님이 도운 것일까. 배는 표류한 지 한 시간 만에 다시 발동이 걸렸다.

그뒤 이들은 ‘위성 좌표’를 끊임없이 확인하면서 북위 37도 인근 공해상에서 남한의 서해안 쪽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마침내 18일 오후 6시 20분경 ‘대한민국’ 국호가 선명한 인천해경 경비정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북위 37-00-30분, 동경 125-37-45분’으로 인천 옹진군 울도 서방 17마일 해상이었다.

박희제기자 min07@donga.com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