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전영한기자]
《‘대덕밸리 키드’인 노진영군(15·대덕중3년)은 미국 변호사가 되고 싶어한다. 진영이는 얼마 전 이 꿈에 한 발 다가서는 작은 성공을 이뤄냈다. 민족사관고 국제계열에 합격한 것이다. 전국의 수재들이 선망하는 민사고 입시 합격 비결에 대해 진영이는 이렇게 말했다. “팀워크가 좋았어요.”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다. 진영이는 이런 점에서 공부벌레로서 제 몫을 다했다. 가족들의 도움은 이런 진영이의 재능과 노력에 날개를 달아줬다.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인 아버지 응원씨(51)는 영어로 수학 문제를 푸는 심층면접을 도왔다. 영어 에세이를 쓰는 논술 시험 준비는 사회학 강사인 어머니 서명성씨(47)가 거들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사과정 전기전자과 4학년인 형 현우씨(21)는 ‘노진영을 강력 추천합니다’라는 제목의 추천서를 썼다. 대덕과학고 2년만 마치고 KAIST에 조기 합격한 자신의 경력을 걸고 쓴 추천서였다. 진영이 가족이 경험한 작은 성공은 수재들이 모여 사는 대덕밸리에서도 흔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자녀의 교육 문제를 남의 손에 맡겨두지 않고 부모 형제가 팔을 걷고 나서는 일은 대덕밸리의 일상이다. 서울에서 들려오는 입시 성공담들은 막대한 사교육비와 첨단을 걷는 교육 산업의 합작품인 경우가 많다. 진영이의 경우 소자본의 가내 수공업으로 빚어낸 명품이라고 해야 할까.》
진영이가 다니는 대전 유성구 가정동 대덕중학교는 대덕밸리라 불리는 대덕연구단지 내에 있다. 이 학교 학생 2명 중 1명의 아버지는 단지 안에 직장과 집을 갖고 있는 교수나 연구원이다. 전교생 815명 가운데 304명이 유학 중인 아버지를 따라 외국에 거주한 경험이 있고 10명중 1명꼴로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다.
진영이는 전형적인 대덕밸리 키드다. 진영이네는 연구단지 서쪽에 있는 신성동 두레아파트에 산다.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인 아버지 노 교수는 큰아들 현우를 낳은 이듬해인 1982년 미국 인디애나대로 유학을 떠났다. 서울대에서 독문학 석사를 마친 어머니 서씨는 현우가 만 두돌이 지난 뒤 전공을 바꾸어 인디애나대에서 사회학을 공부했고 박사학위 과정이 끝나갈 즈음 둘째 진영이를 낳았다. 진영이는 자동적으로 미국 시민권을 갖게 됐다. 88년 노 교수가 학위를 마치고 귀국할 때 어머니 서씨는 논문을 포기하고 8세인 현우와 생후 8개월된 진영이를 데리고 귀국, 89년 대덕 연구단지에 합류했다.
● 엄마 아빠가 모두 미국 석박사
대덕밸리는 여러모로 아이들을 키우기에 좋은 곳이다. 단지 내 사람들은 교육이나 소득 수준이 비슷해 동네가 안정적이다. 주변에는 번화한 상가가 발달돼 있지 않아 조용하다. 아버지들은 직업 특성상 밤늦도록 술자리를 전전하기보다는 집과 연구실을 오가며 산다. 직장도 집도 연구단지 안에 있어서 늦게까지 연구할 일이 있어도 저녁은 집에 들러 자녀들과 함께 먹는다. 어머니들도 교육 수준은 높지만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대개 집을 지키고 있다. 유학시절 서구식 생활 방식과 검소함이 몸에 밴 어머니들은 빵을 직접 굽고 쇼핑보다는 책을 가까이 하고 산다.
진영이 형제도 방 4개 중 3개가 서재인 집에서 어머니가 굽는 빵냄새를 맡으며 책만 펼쳐들고 있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어머니 서씨는 충남대 배재대 등에서 시간 강사를 했지만 두 아들이 필요로 할때는 늘 아이들 곁을 지켰다.
하지만 집 안팎으로 안정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학력이 높은 부모에게서 좋은 머리를 타고난 아이들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이 치열하다.
“시험이 쉽게 나오면 한 문제만 틀려도 전교 등수가 80등까지 내려간다. 실력이 없어 시험을 망쳤다면 모르지만 한번의 실수로 등수가 뚝 떨어지는 것은 참기 어렵다.”(진영)
대덕밸리의 교육열이 서울보다 낮을 리 없다. 그러나 입시학원 등 사교육 인프라는 서울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대학이나 연구소의 월급이 후하지 않아 원없이 과외를 시킬 형편도 못된다. 자연히 과외 학습의 가내 자급자족이 이뤄진다.
진영이 형제는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부모의 학습 지도를 받았다. ‘과외 교습’이 이뤄지는 곳은 어머니 서씨의 서재. 노 교수와 서씨는 지름 1.5m 크기의 원탁에 형제를 차례로 앉혀두고 공부를 도왔다.
● 학원등 사교육 인프라 서울 못미쳐
대덕중학교 3학년 친구들과 노트를 보며 이야기하고 있는 노진영군. 이 학교에는 성적이 비슷한 학생들이 몰려 있어 학업 스트레스가 심하다
영어는 어머니 담당이었다. 대다수의 대덕밸리 아이들이 그러하듯 진영이 형제도 미국에서 영어를 배우는 혜택을 누렸다. 현우는 유학 중인 부모를 따라 미국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진영이는 중학교 2학년 2학기에 교환교수로 떠나는 아버지를 따라가 미국에서 4개월간 공립학교를 다녔다.
어머니 서씨는 성문 기본영어로 최소한의 문법 지식을 가르치고 영어책을 많이 읽도록 지도했다. 미국에서 가져온 책들과 서울 교보문고에 틈틈이 들러 사들인 페이퍼백이 교재였다. 진영이는 영어 실력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학교를 다닌 4개월간 새벽 2시까지 영어책과 씨름한 끝에 귀국 후 치른 토플 시험에서는 277점(PBT로 647점)을 받아 민사고 지원 자격(PBT 620점 이상)을 얻었다.
시사문제에 관심이 많은 진영이는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을 탐독한다. 민사고 진학을 위해 에세이도 여러편 썼는데 엄마는 진영이가 써온 에세이를 검토하고는 “읽는 사람의 관심을 끌려면 구체적 사례를 넣어야 해”라며 교정을 해줬다.
노 교수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수학 공부가 시작됐다. 우등생인 형제는 혼자 공부하다 막히는 부분을 표시해두었다가 아버지에게 내밀었다. 노 교수는 원탁 맞은편에 아들을 앉혀두고 화이트보드에 공식을 써가며 문제를 풀어주었다.
부모들의 교수법이 완벽한 것만은 아니었다.
성질이 급한 어머니는 아들이 엉뚱한 대답을 하면 원탁 위의 책들을 집어던졌다. 과외가 끝날 즈음엔 원탁 위에 쌓여있던 책들이 모두 바닥에 떨어져 있곤 했다. 아버지는 한번도 화를 낸 적이 없다. 하지만 형제의 표현을 빌리자면 “쉬운 말도 어렵게 하는 교수들의 특성” 때문에 간혹 눈높이 교육이 이뤄지지 못했다.
“과학고와 민사고에 진학하려면 과학이나 수학 경시대회 수상 경력이 필요하다. 서울에서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은 출제 경향을 훤히 꿰고 있었다. 아버지의 강의는 그런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현우)
이 때문에 진영이 형제는 경시대회를 앞두고는 인근 둔산 신도시에 있는 학원이나 KAIST학부생들에게 2,3개월간의 단기 과외를 받았다.
이 같은 자급자족식 과외 방식에 대해 진영이네 가족 구성원 모두 만족도가 높다.
우선 방과 후 학습이 집에서만 이뤄지니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없다.
현우는 “엄마는 훌륭한 조련사였다”고 했고 진영이는 “부모는 결코 포기하는 법이 없는 최고의 선생”이라는 표현을 썼다.
어머니 서씨는 “아이들 곁에서 공부를 도와주지 않았다면 부모 자식간에 싸울 일이 많았을 것”이라고 했다.
“자녀와 갈등 관계에 있는 부모들의 공통점은 자녀를 잘 모르거나 과대평가한다는 점이다. 아이를 직접 지도해보니 아이가 잘하고 못하는 게 무엇인지, 무엇을 하고 싶어하고 적성은 무엇인가를 파악하게 됐다. 아이를 잘 알게 되니 턱없는 기대를 하지 않게 돼 거리감을 줄일 수 있었다.”
한동안 진영이의 고교 입시에 매달렸던 가족들은 이제 작은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모처럼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름 방학이 지나고 가을이 오면 진영이는 민사고, 형은 KAIST 기숙사로 돌아간다. 몇 번이나 박사 논문을 쓰려다 포기하고 형제들의 곁을 지켜온 서씨도 올 가을엔 여성학 공부를 다시 시작할 계획이다.
대전〓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