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잠실야구장에선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다. 9회초 LG 왼손투수 최창호가 기아 장성호에게 보복성 빈볼을 던졌을 때다. 기아에서 가장 먼저 최창호를 향해 돌진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이건열 코치였다. 그라운드에서 몸싸움이 일어났을 때 선수가 아닌 코치가 나서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
최창호는 색깔로 치면 ‘잿빛’에 가까운 선수다. 웬만한 팬이라면 그의 이름 석자 정도는 알지만 어느 팀 소속인지 잠깐 헷갈리게 하는 선수. 작지만 근육질 몸매에 앳된 얼굴과 수려한 용모를 자랑하지만 일찍 가정을 꾸려 한창 나이인 20대 때조차도 여성 팬은 거의 없었다.
이런 그가 올해 36세로 프로 16년차인데다 시즌 초 투수 중 세 번째로 500경기 출장의 대기록을 세웠다는 사실을 아는 팬은 더욱 드물다. 이 코치가 직접 뛰어간 것은 바로 이 때문. 아무리 흥분한 상태에서의 집단행동이지만 엄격한 선후배 관계를 깨뜨리면서까지 최창호에게 물리적 행사를 할 수 있는 선수는 기아에 없었다.
어쨌든 최창호는 이번 사건의 최대 피해자가 됐다. 빈볼이야 솔직히 벤치의 지시를 따랐을 뿐이지만 10경기 출장정지의 중징계를 받아 2군행 보따리를 싼 것은 고스란히 본인의 몫이었다.
더욱 남몰래 애간장을 태운 것은 그날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던 8회말 기아 김주철이 팀후배 김재현에게 빈볼을 던졌을 때 가장 먼저 달려나갔다가 외국인 투수 리오스와 심한 몸싸움 끝에 어깨를 삐끗한 것. 그 상태에서 무리하게 9회초 등판한 게 어깨를 심하게 다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기아 선수들에게야 무슨 감정이 있겠어요? 이건열 선배도 간접적이나마 유감의 뜻을 전해왔고요. 하지만 다시 그런 상황을 맞이하게 되더라도 빈볼은 던질 겁니다.”
태평양 시절인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천하의 해태 선동렬과 탈삼진 경쟁을 벌였을 정도로 강철 어깨를 자랑했던 최창호. 현대를 거쳐 LG로 이적한 90년대 중반부터는 선발에서 중간계투로 밀려났지만 마냥 녹색 그라운드가 좋아 자존심은 잠깐 제쳐둔 채 프로 20시즌을 채워보겠다는 게 그의 소박한 바람이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