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개막. 축구장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 열기에 힘을 얻은 노장들의 투혼도 무서웠다. 김남일 안정환 송종국 이천수 등 젊은 ‘태극 전사’들이 불붙인 축구 열기의 배턴을 선배들은 관록과 투지로 이어받았다.
K리그에서 뛰는 월드컵 전사 15명중 7일 개막전에 모습을 드러낸 선수는 5명뿐. 당장 그라운드에 나서기에는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쳤다.
하지만, 전국에서 벌어진 프로축구 4경기는 월드컵 본선 못지않게 흥미진진했다.
월드컵으로 잠시 ‘개점 휴업’에 들어갔던 ‘왕년의 태극전사’들은 때를 기다렸다는 듯 맹활약을 펼치며 경기장을 찾은 관중을 열광에 빠뜨렸다.
지난해 성남 일화를 프로축구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최우수선수(MVP)상을 받은 신태용(32)은 이름에 걸맞는 플레이를 보였다. 포항 스틸러스와의 홈 경기. 0-1로 뒤지던 후반 2분 벼락같은 왼발 슛으로 동점골을 뽑아낸 뒤 포항이 다시 한 골을 넣자 이번에는 황연석의 패스를 오른발로 넣어 또 동점을 이끌어냈다. 신태용은 후반 42분, 페널티지역 앞쪽에서 상대 수비를 넘기는 로빙 패스로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다. 이 패스는 백영철의 해딩 패스로 연결돼 김상식이 발리 슛으로 마무리했다.
현재 83골과 52도움을 기록하고 있는 신태용은 “국민이 축구를 보는 수준이 높아진 만큼 멋진 경기를 하겠다는 각오로 나섰다”며 “프로축구 최초의 ‘60골-60도움’에 도전하겠다”고 한마디.
비록 팀은 패했지만 포항의 하석주(34) 역시 왕년의 실력을 보였다. 하석주는 후반 상대의 공을 빼앗아 단독 질주한 뒤 코난의 득점을 어시스트 하는 등 폭넓은 시야를 과시하며 포항의 중원을 이끌었다. 특히 왼쪽 사이드 어태커로 활약하던 ‘왼발의 달인’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변신, 맏형으로의 역할을 다했다.
전북 현대의 김도훈(32)도 ‘히딩크 호’ 하선의 아픔을 뒤로 한 채 날렵한 몸놀림을 보여 홈 팬들을 흐뭇하게 했다. 자칫 ‘월드컵 스타’ 최진철에게 간판 스타 자리를 내줄 상황에 몰렸지만, 김도훈은 ‘녹슬지 않은 기량’으로 안양의 문전을 헤집었다.
10일 계속되는 K리그에서는 포항 김병지가 골문을 지키는 등 슬슬 월드컵 대표 선수들이 출전할 채비를 하고 있다. 태극 전사들의 합류는 노장들의 맹활약에 시너지 효과로 작용해 그라운드를 더욱 뜨겁게 불태울 전망이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