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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유가의 사상 알기쉽게 풀어 '생성의 철학 왕선산'

입력 | 2002-02-22 18:00:00


◇ 생성의 철학 왕선산 / 이규성 지음 542쪽 1만7000원 이화여대출판부

흔히 유가의 이상이자 궁극 목표는 ‘인문화성’(人文化成·인간의 문화로 세상을 완성한다)이라 한다. 여기에는 사람이 만물의 영장으로서 짐승과 구별되는 사람의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천부적으로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 그리고 그런 세상은 사람의 후천적 인위적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해야만 이룰 수 있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왕선산(王船山·본명 夫之·1619∼1692)은 바로 이런 ‘인문화성’의 세상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보고, 자긍심이 오히려 열패감으로 변한 나머지 비통한 울분을 평생토록 가슴에 지닌 채 살았던 철학자다. 그는 이 ‘인문화성’이 앞으로 올 세상에서 실현되기를 기대하고 그것이 실현됨으로써 중국 한족의 문화적 우월성이 입증되리라는 염원을 가지고 ‘인문화성’의 철학사상을 방대한 체계로 엮어 제시했다. 그의 철학 사상은 신중국을 건설한 마오쩌뚱(毛澤東) 사상의 기반 형성에 깊은 영향을 미침으로써 뒷날 그 바람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왕선산의 철학 사상은 방대할 뿐만 아니라 중국철학사 전체를 꿰뚫는 깊이를 지니고 있고, 그만큼 난해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이 때문에 후학들의 접근을 쉽게 용납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은 이러한 그의 철학사상 전체를 꿰뚫어 보여 주는 데 손색이 없는 연구서다.

저자는 “내재적 재해석의 방법, 구조적 방법, 지식 사회학적 방법을 통해 전통 세계관의 특성들을 이해하고, 외재적 비판의 방법이 갖는 독선적 무지를 벗어나 신유가의 주체성 개념이 함유하고 있는 철학적 의의를 권력성은 지양하면서 드러내겠다”며 이 책의 방법적 원칙을 밝힌다. 저자는 이를 입체적 접근이라 한다. 그리고 이런 태도에서 전통을 조명할 때, 전통 세계관의 구조와 개념들이 살아 움직이며 새로운 시대와 철학을 예비하고 실험하도록 호소하는 것으로 다가오고, 자기를 죽게 한 한계적 요인을 넘어 서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아 새로운 맥락에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바로 이 방법적 원칙과 저자의 기대를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일별할 때, 저자가 이 책에서 이들을 성공적으로 운용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마디로 왕선산의 철학을 오늘날의 의미로 살려 놓으며 논의의 장으로 끌어내는 데서 이 책은 성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왕선산의 삶과 문제 의식, 역대 철학자들 가운데 두드러지게 비교되는 이들과의 전승과 차이, 형이상학, 세계관, 인간관, 인식론, 역사철학, 경제 정치의 원리 및 평가와 현재성이라는 주제로 가르면서도 일관된 체계로 엮어 일목요연하게 제시하고 있는 서술 방식이 왕선산의 철학사상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다만, 서구철학사의 쟁점을 통해 왕선산의 철학과 동양철학을 분석한다는 평을 가능하게 할만큼 서구 철학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개념으로 정리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다 보니 정작 동양철학의 정수인 수양론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또한 왕선산이 주장하는 ‘조화’뿐 아니라 부조화와 갈등 역시 세계의 본질적인 것이라 하며 그를 비판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해서도 논의의 여지가 있다.

김진근 한국교원대 교수·동양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