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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과 사람]마추피추행 협궤열차와 페루동부 '아마존의 눈썹'

입력 | 2002-02-15 17:17:00



《잉카의 옛 수도인 쿠스코에서 북서쪽으로 100㎞ 떨어진 마추피추로 가는 기차 길 차창에는 유난히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잦다. 기차 옆으로 등나무와 야자수 등 각종 아열대림 나뭇가지가 스치는 소리. 안데스의 ‘허리’를 타고 숲 옆을 비껴, 잉카의 ‘심장부’로 들어가는 이 열차는 폭이 채 80㎝가 안되는 초 슬림형 열차다. 선로 폭이 좁은 것은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남미 아마존 열대 우림이 시작되는 곳이 마추피추 인근인 페루 동부 지역인 것과 연관이 있다. ‘아마존의 눈썹’으로 불리는 이 곳의 아열대 식물들이 자랄 수 있는 공간을 최대로 확보하기위해 수입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선로를 좁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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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선로를 좁힐만큼 산세는 그리 험하지 않다. 이 지역은 해발 3500m에 있는 쿠스코보다 1000m 이상 낮아 안데스에서 그 흔한 만년설도 없다.만년설을 쓴 해발 5750m의 베로니카 산이 멀리에서 보일 뿐이다.

이 열차를 운영하는 ‘페루 레일’(perurail)의 안토니오 로페즈 운행실장은 “선로의 폭을 이 열차의 1.3배 정도인 보통 넓이로 건설해 철도를 운영했다면 승객들에게 커피와 샌드위치 등을 파는 간식 판매대의 크기도 그만큼 커졌을 것”이라며 “선로를 줄여 설계한 덕에 10㎢당 아열대 식물 5000여 그루가 더 자랄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페루 레일'에 타고 있는 페루인과 관광객들

‘아마존의 눈썹’을 지키기위한 페루 인들의 노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쿠스코에서 페루 최대 관광자원인 마추피추 사이를 연결하는 차로는 없다. 최근에는 편도 4시간의 기차 길이 지겨운 이들을 위해 100㎞를 20분만에 주파하는 영업용 헬리콥터도 등장했지만 아직 이곳에 아스팔트를 들이 붓는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마추피추 인근의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서 숙박업을 하는 하이메 페드로씨(27)는 “차로가 뚫리면 사람들은 많이 찾겠지만 그러려면 숲을 베어내야하고 이 지역 생태는 장담할 수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잉카 제국부터 한정된 농토를 최대한 활용하기위해 ‘안데네스’(andenes)라는 특유의 계단식 논밭을 개발했던 페루 인들. 이들이 손해를 감수하면서 지켜내고있는 ‘아마존의 눈썹’은 ‘안데네스’처럼 짜투리 땅도 소중히 여기는 이들의 자연관이 반영되어 있다.

남반구의 여름인 요즘 이 지역은 두 시간 단위로 강수 여부를 추정해야할 정도로 비가 불규칙적으로 자주 내린다. 이 곳에서 아열대림은 산사태를 막아 내는 일등 공신이다. 마추피추 인근을 휘감아도는 우루밤바 강 위에 있는 산의 평균 경사는 40%. 기차는 강과 산 사이를 뚫고 지나간다.

쿠스코 문화산업국(INC)의 훌리오 마그레타 기획실장은 “아열대 식물이 썩어 만들어지는 퇴적물은 지표의 침식을 막기 때문에 이곳 토양에는 미세한 틈이 많아 물을 땅 속으로 잘 침투시킨다”며 “이 곳 땅의 물 흡수력은 인근 아르헨티나의 초지(팜파스)의 30% 이상”이라고 말했다.

언제 무너질 지 모르는 산비탈을 끼고있는 우루밤바 강에 10여년 전 수력발전소가 들어설 수 있었던 것도 자동차의 통행을 제한하는 등 산림을 전략적으로 육성했기 때문이다.

수십년 동안 관리 당국의 골치를 썩였던 원주민들의 불법 화전(火田) 문제도 거의 해결된 상황이다. 쿠스코 문화사업국측은 “나무를 베어가기위한 임도(林道)를 열면 원주민은 그 임도를 이용해 오지까지 들어가 남은 수목을 벌채 반출하기 때문에 도로가 열대림 파괴를 촉진할수 있다”고 말했다. 대신 이들 원주민들에게는 마추피추로 올라가는 기차역인 푸엔테스 루이나스 역 등지에서 우선적으로 노점상을 열 수 있는 일종의 ‘난전권’을 보장해주고 있다.

16세기에 그 자취를 감춘, 마추피추를 정점으로 하는 잉카 문명의 가장 큰 미스터리는 바로 수레바퀴를 이용하지 않았다는 것. 어떻게 수레없이 정방형으로 자른 거대한 석재를 2250m 산 정상에 있는 마추피추 등에 옮겨놓을 수 있었냐는 것이다.

하지만 500여년이 지난 후, 이들의 후예인 페루인들도 역시 현대 교통수단의 혜택을 과감히 줄이고 이 곳 ‘아마존의 눈썹’과 상생을 일구고 있었다. 오늘날 이 지역에 전세계에서 그토록 많은 관광객이 모여 드는데도 경제 사정이 풍족하지 못한 페루인들이 산과 산림을 온전히 지켜내고 있는 것에 대해 후세의 사람들은 역시 미스터리라고 하지 않을까.

쿠스코·마추피추(페루)〓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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