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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이부부의 세계 맛기행]싼맛에 먹는 폴란드의 서민 식당 '밀크바'

입력 | 2001-12-10 16:57:00


지난번 폴란드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과용했던것 기억하시죠? 계좌번호 물어보는 메일은 한통도 없고(^^;) 정말 바게트만 뜯어야 하나 아니면 노숙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참에 다행히도 바게트도 안먹고 따뜻한 잠자리도 보장해줄 수 있는 저렴한 솔루션을 발견했답니다. 그 이름하야 '밀/크/바!'

밀크바? 이자들이 드디어 바게트 대신 우유로 배채우기로 작정했구나. 정말 계좌번호를 물어봐야겠다... 라고 생각하신 분이 계시면 이 글을 그만 읽으시고 이메일을 여십쇼. 하지만 별로 호응이 없을 것으로 역시 예상하고 있기 때문에 설명을 자세히 드려야겠네요.

'밀크바'란 우유를 파는 곳이 아니고 예전 폴란드가 공산주의 체제일 때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국가에서 운영했던 값싼 식당을 부르는 이름입니다. 말하자면 '식량배급소'구실을 했다고 하니 북한에 있다는 '밥공장'쯤으로 보면 될까요? 우리로 치면 학교식당이나 회사식당 같은 곳이 시내 한복판에 나와 있다고 생각하면 제일 이해가 빠르시겠죠.

이런 밀크바는 동유럽 국가들이 자본주의화되면서 대부분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그럴듯한 레스토랑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몇몇 유명한 곳들은 놀랍도록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어 저임금의 노동자나 노인들이 여전히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합니다. 폴란드어로는 '바 메르쯔니(Bar Mleczny)'라고 하는데 보통 '바 메르쯔니 뭐뭐뭐' 해서 이름을 붙이더라구요.

싼 맛에 가는 마당에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있나요. 입구에 들어서면 우리나라 분식집처럼 벽면에 빽빽하니 메뉴가 적혀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카운터가 있구요. 메뉴를 정하고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면 표딱지를 주는데 이 표딱지를 옆에 있는 배식구로 가서 음식을 타서 빈자리에 앉아 먹으면 됩니다. 다 먹은 후 치우는 것도 물론 직접 해야지요.

하지만 '싼 맛에...'란 선입견 없이 보면 사실 그다지 나쁠것도 없는 곳입니다. 시설은 화려하진 않지만 깨끗하고, 직접 음식을 타다 먹고 직접 치우는 것도 햄버거집 같은데서 매일 해오던 '셀프서비스'라고 할 수 있으니 별다른 노동을 시키는 것도 아니지요.

단 우리같은 여행자에게 한가지 곤란한 점이 있다면, 벽면에 붙은 메뉴들이 모두 폴란드말로 되어 있어서 사전에 학습 없이 갔다가는 카운터 아줌마와 뒤에 길게 늘어서 있는 다른 손님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게 된다는 겁니다. 저희가 처음 이 밀크바를 발견하고 들어갔을때 정말 당황스럽더군요. 보통 영어메뉴가 있거나 패스트푸드점같이 그림이 있어서 '이거,저거' 손으로 찍거나 하면서 말 안통하는 나라들을 지나왔었거든요. 근데 여긴 저희가 들어서자 일제히 시선이 집중되면서 (거긴 외국인들이 거의 없거든요. 더군다나 저희같은 동양인들은...) 순간 흐르는 짧은 정적. 휴~ 이제까지 다니면서 별로 느끼지 못했던 '아, 내가 정말 다른 세상에 와 있구나' 라는 느낌이 번쩍 들더라니까요.

그래도 뭘 먹긴 먹어야겠는데 싶어 다른 사람들이 뭘 먹고 있는지 스윽 살펴보았습니다. 앗. 그런데 저건 분명 만두가 아닌가. 저기 저쪽에서 한 할아버지가 먹고 있는건 분명 우리나라 고기만두와 비슷하게 생긴게 아주 먹음직스러워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그 할아버지에게 가서 종이를 내밀고 그 음식의 이름을 적어달라고 했더니 이름을 적어주고 폴란드 말로 설명까지 해주더군요. (고맙게도 -_-;;) 이렇게 대충 몇가지 이름을 적어들고 카운터에 내밀고 계산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우리가 배식구에서 받아온 음식은 딱 보기에 고기만두와 돈까스! 물론 모양을 보고 그나마 우리에게 익숙해 보이는 걸로 선택해서 그렇겠지요. 하지만 그 맛은...

고기만두와 비슷한 그 요리는 피에로지(Pierogi)라고 부르는 것으로 정말 만두긴 만두였었습니다. 겉보기에는 두툼한 고기만두하고 똑같이 생겨서 아주 맛좋게 보이는데 일단 한입 베어물면 그 환상이 싹 달아나더라구요. 보통 우리네 만두가 얄팍한 만두피에 두부와 고기, 부추 등을 갈아만든 푸짐한 속이 들어가는 반면에 피에로지는 만두피, 즉 겉부분이 상당히 두꺼워서 마치 송편같고 속은 푸석거리는 고기만 들어있어서 우리 입에는 잘 맞지 않는 음식이었습니다. 살짝 쪄내야 만두맛이 살아날텐데 이건 푹 삶아버려서 두꺼워진 껍질이 흐물거리는데다 고기엔 냄새까지...

돈까스처럼 생긴 'Kotlet Schabowy'는 커틀릿이란 이름처럼 진짜 돈까스이긴 했는데 가격을 낮추기 위해 안 좋은 재료를 썼는지 바삭거리는 맛이나 두툼한 고기맛은 없고 그냥 퍽퍽하고 딱딱한 고기튀김 수준이었습니다. 밀가루 반죽에 소금을 많이 넣었는지 좀 짜게 느껴지기도 하구요. 달랑 두덩어리만 줘서 배 채우는데에는 오히려 옆에 내준 감자으깬 것이 한몫했지요.

다들 입에 썩 잘맛는 음식들은 아니었지만 전 유럽을 통털어서도 이렇게 값싼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을 듯합니다. 그야말로 '싼 맛'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폴란드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식당이니 경험삼아 들어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먹은 요리 이외에도 당근,감자가 주재료가 된 갖가지 스프와 국물요리,찐요리,그리고 꼭 밥 삶아놓은 것 같은 죽과 값싼 고기요리들도 많이 있거든요.

여기 손님들은 혼자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주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나 후다닥 먹어치우고 급히 자리를 뜨는 허름하게 입은 젊은애들 뿐이더라구요. 관광지만 다녀서는 보기 힘들었던 가난한 서민들의 쓸쓸하고 구부러진 등을 보고 있으니 폴란드의 어려운 현실 속으로 깊숙히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 어디서 먹나요?

바르샤바 시내를 걷다 보면 수수하고 평범한 외관에 간판에는 '바 메르쯔니(Bar Mleczny) 뭐뭐뭐' 하고 써 있는 집을 자주 발견할 수 있으실거예요. 그 중에서도 음식의 질이나 양 면에서 추천하고 싶은 집은 바르샤바 중심가에서 구시가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Bar Mleczny Familijny'라는 곳으로 주소는 37/39 Nowy Swiat입니다.

☞가격

만두 모양의 'Pierogi' 4.5즐로티(폴란드 1즐로티 = 한화 약 330원)

돈까스 모양의 'Kotlet Schabowy' 4.8즐로티.

둘다 약 천오백원정도 하니 한끼 식사론 상당히 싼 가격입니다. 하지만 웬만하면 '피에로지'는 시도하지 마실 것을 권해 드립니다. -_-; 가격이 저렴하다 보니 고기 종류의 요리는 대부분 실패했구요, 감자나 당근같은 야채요리나 파스타류는 그런대로 먹을만 하더라구요. 그래도 따뜻한 음식이니 바게트나 샌드위치보단 훨씬 낫죠 뭐. 덕분에 노숙 안해도 되었으니 저희에겐 고마운 배급소 역할을 한 셈이었습니다.

밀크바에서 우유찾다 혼난 꿈틀이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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