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교육인적자원부의 발표에 따르면 본고사와 기여입학을 제외하고는 앞으로 대학 운영을 완전 자율화한다고 한다.
일방적으로 신입생 모집 단위를 광역화하고 교수 요원의 30% 이상을 타 대학 출신으로 충당하도록 행정력을 휘두르고서도 이렇게 말장난을 해도 좋은 것인지 어리둥절해진다. 학생 선발권과 교수 인사권을 제한하는 대통령령의 합법성 여부부터 대학 쪽에서 벌써 헌법에 물어보아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집단위 문제는 가르치는 쪽의 구조개혁이 선행됐을 때 스스로 해결된다는 사실을 정부와 대학 모두 간과하고 있다.
대학의 1, 2학년은 적어도 앞으로 30년 내지 40년 동안 활용할 수 있는 지식기반을 구축해야 할 때이며 무한대로 뻗어나갈 수 있는 감수성을 개발·함양해야 할 삶의 단계다.
현재의 교육조직으로 모집단위의 광역화만 고집한다면 대학 학부과정의 2년 간은 결국 인기학과 진입을 위한 점수 따기 과정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대학 캠퍼스는 제2의 입시지옥화할 것이 뻔한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단과대학과 전공학과를 완전히 해체하고 유사 학과를 통폐합해 명실상부한 학부체제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현재 서울대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립대학들은 명목상으로는 종합대학이지만 실제로는 단과대학 연합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단과대학과 단과대학, 학과와 학과 사이에 엄청난 중복 현상이 상존하고 있지만 단과대학 및 학과 이기주의 때문에 의당 전공 영역별로 통합되어야 할 교수 인력이 따로따로 단과대학과 학과를 분점하고 있다. 내용과 성격을 같이하는 교과목들이 가르치는 쪽의 일방통행으로 강요되고 있는 것이다.
차제에 우리나라 대학의 얼굴 모습도 재확인해야 한다.
몸집 큰 국립대 가운데는 60명에 육박하는 외국문학 전공교수와 40명을 상회하는 언어학자가 서로 다른 단과대학이나 학과에 분속(分屬)되어 상호불가침의 안일을 누리고 있는 경우도 있다. 외국문학부와 언어학부 체제로 새롭게 태어나 수월한 교양교육 제공의 선도자적 구실을 해야 할 것이다.
특정 외국문학과의 교수와 학생 정원이 자국의 국어국문학과보다 많은 대학도 있는지 찾아보아야 한다. 자국의 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수가 수천명에 이르고 있는 독일 대학들의 소중한 모범을 우리는 왜 백안시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
철학 분야의 경우는 경이롭게도 10여명의 교수 정원 가운데 한국철학 전공 교수는 겨우 한두명밖에 없는 대학도 있다면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 당장 대학은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지혜를 가르칠 마지막 단계임을 자각하고 이를 실천할 체제 구축에 나서야 한다.
나라와 경제를 살리는 지혜도 여기서 얻어내야 한다. 요즘 인문학의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는 것도 물론 이 때문이다.
민병수(서울대 명예교수·국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