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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포럼]박성래/민족주의 열풍 언제 끝날까

입력 | 2001-09-06 18:31:00


가을이다. 가정용 전기료를 누진제로 부과한다는 소식에 에어컨도 켜지 못한 여름은 그렇게도 덥더니 그래도 가을은 성큼 다가오고 있다.

그렇게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역사에 무슨 법칙은 없지만, 시대의 흐름은 분명히 있다.

어쩌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는 듯하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민족’이란 말도 그렇다. 남쪽만이 아니라 북쪽에서도 자주 쓰는 ‘민족’이란 말은 누가 언제 처음 쓰기 시작했을까? 북쪽에는 단군릉이 있다지만, 설마 4000년 전에 이미 민족이란 말이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면 언제 그 말은 생겼을까?

조선왕조실록을 CD로 검색해 보니 ‘민족’이란 말은 보이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아직 조사해 보지 못했지만, 다른 많은 용어처럼 이 단어도 19세기 후반에 일본에서 처음 만들어졌을 듯하다. 당연히 이 땅에는 그 후에 들어 왔을 것이고….

▼군국주의-나치즘의 발판▼

이렇게 1세기 남짓한 짧은 역사를 가진 말 한 마디가 오늘 우리에게는 ‘절대적’ 무게를 갖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런 경우 민족은 그냥 민족으로서가 아니라 ‘민족주의’로서 더욱 역사상의 무게를 갖는다. 그래서 최근 평양에서의 ‘8·15 행사’에는 ‘민족통일 대축전’이란 이름이 붙여져 있고, 어떤 사람은 ‘반민족적’ 지역감정을 말하기도 한다. 더 이상 예를 들 필요도 없을 만큼 우리는 걸핏하면 민족을 들먹인다.

그러면 서양에서는 어떤가? 물론 근대적 민족주의는 근대사회가 태동하면서 이미 17세기에 시작해 19세기까지 지구를 휩쓸었다. 민족주의는 마치 근대국가의 지표라도 되는 양 먼저 유럽을 휩쓸더니, 곧 지구 전체로 펴져 나간 것이다. 그것은 또 부르주아혁명과도 맥을 같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라와 나라 사이의 충돌하는 민족주의는 필경 못된 방향으로 발전해 특히 20세기 초에는 독일과 일본의 군국주의 또는 나치즘의 배경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바그너 음악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낭만적 민족주의를 거쳐 나치로 달려가고, 일본에서는 1920년을 전후해 민주주의가 크게 발전하는 듯하더니 그만 국가주의 쿠데타로 끝장을 내는 데도 민족주의가 한몫을 한다.

민족주의는 100년 전쯤 세계 선진국에서 그 맹위를 떨쳤다고 할 만하다. 그 후 서양에서는 민족주의 열풍이 사그라지게 된다. 1916년 당대 최고의 문학자 로망 롤랑은 ‘머지 않아’ 민족 사이의 갈등이 끝나고 유럽 공동체가 형성될 것을 예언했다. 정말로 그가 예언한 유럽 공동체가 지금 출발하고 있지 않은가?

1915년 롤랑은 ‘장 크리스토프’(1904∼1912)라는 10권짜리 대하소설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는데, 이 소설은 바로 독일의 작곡가 베토벤을 모델로 쓴 것이다. 프랑스 작가가 본 독일 사람 베토벤의 모습은 우리도 친숙한 유명한 일화와 관련이 있다. 나폴레옹이 1804년 12월 스스로 군주(황제)가 되자 그의 권력욕에 실망한 베토벤은 원래 ‘보나파르트에게’ 헌정하려던 표지를 찢어 버리고, 그의 교향곡 3번을 ‘영웅’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영웅’ 또는 이탈리아어로 ‘에로이카’로 불리는 참 아름다운 그의 대표작이다.

▼개도국에선 여전히 맹위▼

내가 보기에는 민족주의란 이제 대체로 그 수명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에서는 아직도 그 위력이 대단하다. 한국의 경우 식민지 경험 때문에 정상적인 국가 발전의 길에 접어들 수 없었던 과거가 우리를 더 ‘민족주의적’이도록 만들어 주고 있다고도 생각된다. 이유야 여하튼 우리 문화는 서양 사회의 발전 과정에 비하면 조금씩 지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할 만하다. 이것도 ‘문화 지체’ 현상이라면 그렇다.

생각해 보면 북쪽 사람들이 우리보다 한술 더 뜨는 민족주의자들로 보이는 것은 좀 괴이하다.

사실 민족주의의 종언을 가장 먼저 예측한 뛰어난 사상가는 바로 카를 마르크스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1848년 발표한 그의 대표작 ‘공산당 선언’에서 민족의 소멸을 예언했다. 153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아무리 마르크스가 한물 두물 갔다고 해도 그렇지, 북쪽에서 그를 이처럼 홀대한다는 것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박성래(한국외국어대 교수·과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