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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요즘 읽는 책]한수산 '백과사전에도 없는 바티칸 이야기'

입력 | 2001-07-27 18:32:00


‘백과사전에도 없는, 바티칸 이야기’

“거룩하신 교황님.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요, 제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황새가 저를 물어다 놓은 거라고 그러셨어요. 그런데 남동생이 태어났을 때도 또 황새가 물어다 놓았대요. 교황님. 다음 번에는 하느님과 잘 의논하셔서 우리 엄마가 꼭 정상분만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미국 보스톤에 사는 9세 소녀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보낸 전보였다.

‘미래를 점치는 사람’이라는 뜻의 라틴어 바테스(vates)에서 유래되었다는 바티칸(Vaticano). 로마의 테베레 강 서쪽 언덕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언덕에 자리잡은 점장이들이 그곳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점을 치라고 “바테스”라고 소리를 질러대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로마제국 흥망사' 등 금서 400권

이 바티칸에 4000여권의 금서 목록이 있다. 그런데 알렉상드르 뒤마의 ‘몽테 크리스토 백작’이나 에드워드 기본의 ‘로마 제국 흥망사’가 이 목록에 올라 있다. 더군다나 ‘1844년 스위스 연감’도 금서라는데는 웃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이 이 책들을 금서에 오르게 했을까.

이곳의 제일 어른이신 교황이 사는 숙소에는 대리석의 목욕탕과 TV 몇 대가 있고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방이 있다고 한다. 무슨 영화를 보시려고 그런 방까지 만드셨을까.

바티칸에서 발행하는 동전의 한 면에는 교황의 얼굴이 새겨져 있고, 다른 면에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좋다” 또는 “이것은 모든 악의 근원이다”라고 새겨져 있다고 한다. 돈을 발행하면서 거기에 이것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돈에다가 그렇게 가혹한 말을 써넣다니. 악의 근원을 지갑에 넣고 다녀야 하는 바티칸 시민의 마음이 궁금해진다.

◇100여년간 화재 1건도 없다니…

그런 바티칸 시에도 20여명의 소방대원이 있고 지프 모양의 빨간색 소방차가 언제나 대기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한 세기가 넘도록 바티칸에서 화재가 난 일은 없었다니, 이 소방대원 만큼 행복한 직업도 없으리라. 누가 그런 말을 했더라. 강의가 없는 교수, 전쟁이 없는 군인만큼 행복한 직업은 없다고.

바티칸 시에서 기르는 모든 개는 등록을 하여야 하며, 언제나 끈으로 묶어 놓아야 한다. 그런데 현재 등록된 개는 모두 5마리라고 한다. 내가 아는 어느 집에서는 개 3마리를 기르면서 ‘초복이’ ‘중복이’ ‘말복이’라고 이름을 지었다던가. 이 여름에 바티칸의 개도 행복하리라.

바티칸에 얽힌 이런 이야기들은 내가 요즘 읽은 책 ‘백과사전에도 없는, 바티칸 이야기’가 떨어뜨려 준 즐거운 추억의 아주 작고 작은 비늘들이다. 세상에!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재미있게 그리고 이렇게 쓸모 있게 써낼 수도 있다니. 거실 탁자에 이 책은 놓아두고, 이따금 몇 페이지씩 넘겨 읽으며 나는 요즘도 더위를 잊는다.

한수산(소설가·세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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