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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도올, 돌연 방송 중단

입력 | 2001-05-21 19:43:00


동양철학자 도올 김용옥(金容沃·사진)씨가 KBS1 TV ‘도올의 논어이야기’ 방송 강의를 중단한다고 21일 발표했다.

김씨는 이날 오전 KBS의 박권상(朴權相) 사장 등 KBS 관계자 8명에게 각각 ‘방송사퇴 서한’을 제출하고 각 언론사에도 ‘국민에게 드리는 글’이란 제목의 사퇴서를 배포했다. 김씨는 사퇴서 배포 직전 일본으로 출국했고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가 휴식을 취한 다음 한 달 후 귀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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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올 '국민에게 드리는 글' 전문

이에 따라 KBS ‘도올의 논어이야기’는 이번 주부터 방송 중단이 불가피해졌다. 지난해 10월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9월까지 총 100강을 하기로 예정돼 있으며 지난주까지 64강이 방송됐다.

김씨가 스스로 밝힌 방송 중단의 변은 ‘TV 강의로 인해 자신이 지나치게 권력화 우상화되고 있고 그로 인해 학자의 본분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이제 학자로 돌아가 학문연구에 매진하겠다는 것이다.

김씨는 사퇴서에서 “학문의 소산인 강의가 비록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다고 해도 바로 그 공감의 장 속에서 권위화되어 가고, 찬반의 희롱물이 되어가고, 시세의 상품이 되어가고 있다면 그것은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건강을 위해서 모두가 한번 숙고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저를 못 견디게 만드는 중요한 사실은 저 자신이 제 강의로 인하여 권력화되어 가고 있으며 이러한 권력구조 속에서 도올 김용옥이라는 인간이 소외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저 자신의 실존 속에 온축되어 가고 있는 권력을 부정하는 길만이 우리 모두가 사는 길이라는 엄숙한 양심의 명령 앞에 무릎을 꿇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방송 사퇴 결정이 “도피가 아니라 정당한 단절”이라면서 “한 선비가 자신이 권력화되어 가고 권력을 추구하는 자들의 도구가 될 때 가차없이 지위를 사양하고 낙향하거나 은거하는 것은 우리 유학의 유구한 전통”이라고 덧붙였다.

김씨는 또한 박 사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다음 방송에 차질이 없도록 하루속히 프로그램을 개편하고 아울러 자신으로 인해 담당 PD들에게 어떤 피해도 없길 바란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의 사퇴 결정은 제작진도 모르게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프로를 담당하는 박해선 PD는 19일 김씨와 다음 회 방송 내용에 관해 전화통화를 했을 정도로 전혀 몰랐다는 것.

KBS측은 당황해 하며 어이없어 하는 분위기다. KBS 관계자는 “사전에 아무런 통보도 없이 하루아침에 편지만 보내고 직접 연락조차 하지 않은 채 방송을 그만두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행위가 아니냐”고 말했다. 또 KBS 주변에서는 “도올이 100강까지 강의를 끌어가는 것이 힘들었던 게 아니냐” “프로그램이 이제 절정을 지나 내리막길만 남아 있으니 그만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돌았다.

김씨의 제자들인 통나무출판사 관계자들이 이 같은 사실을 알게된 것도 하루 전인 20일 밤. 김씨는 출판사측에 20일 밤 사퇴서를 건네주면서 “21일 오전 일본으로 출국할 테니 그 직후 언론에 이 사실을 알려 달라. 국내에 있으면 사람들이 그냥 놔두지 않을 테니 밖에 나가 조용히 잊혀지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판사 관계자는 “선생님께서 스타가 된다는 것에 대해 좋아하면서도 상당히 부담을 느끼신 것이 사실이고 ‘이렇게 계속 가다간 결국 타락하고 말 것 같다’고 말씀하시곤 했다”면서 “그러나 이처럼 전격적으로 사퇴하실 줄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sjkang@donga.com